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작가도 몰랐던 이야기..김숨 '한 명'
[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을 한 편, 한 편 소개해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만나볼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그려낸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한 명>입니다.
소설이지만, 피해자들의 실제 증언을 그대로 담고 있어 독자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유동엽 기자입니다.
[리포트]
색이 바랜 사진으로 남은 누군가의 젊은 시절.
살아온 세월이 묻어나는 그 얼굴들, 그리고 그때의 기억.
[<한 명> 중에서 : "순사가 어머니 보고 딸을 일본 방직공장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일까 싶어서,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묻지 못했다."]
작가는 활자로 기록된 그들의 기억을 다시 소설로 불러냈습니다.
[김숨/소설가 :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경험했던, 겪어냈던 경험들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소설의 배경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고 단 한 명만이 남은 미래.
주인공은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아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또 다른 '한 명'입니다.
[김숨/소설가 : "소설을 통해서 목소리를 되찾아 드리고 싶다. '나도 피해자요.'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기억은 여전히 만주의 위안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 명> 중에서 : "군인들은 열세 살이던 그녀를 밤새 공기놀이하듯 가지고 놀았다."]
소설로 읽기에도 숨 막힐 듯 잔혹한 주인공의 기억들은 대부분 실제 증언입니다.
[김숨/소설가 : "증언록들 읽으면서... 저도 놀랐어요. 저희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착각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들이 참여하는 수요집회에 지난해부터 등장한 낯선 문구들.
우리 사회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도 소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한 명> 중에서 : "신빙성이 없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피해 사실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던 주인공.
하지만 용기를 내 임종을 앞둔 마지막 '한 명'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한 명> 중에서 :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남승원/문학평론가 : "문학이 어떻게 사건을 윤리적으로 형상화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정말 한 명 한 명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놓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를 우리가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일 것 같습니다."]
소설은 시간의 망각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보여준 할머니들께 바치는 헌사이기도 합니다.
[김숨/소설가 : "피해자라는 말을 하라고, 그것이 시작이라고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할머니들... 저는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김학순/1991년 최초 기자회견 : "일본에서 없대요. 없대요. 내가 죽기 전에 눈 감기 전에 한 번 분풀이, 꼭 말이라도 분풀이하고 싶어요."]
최초의 한 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올해로 꼭 30주년입니다.
이제 열 네 분이 계십니다.
<한 명>은 아직 소설이지만, 머지않은 우리의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류재현 박장빈/그래픽:김은영/자료·장소제공: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음악 SMALL HAND PIANO, 김대윤(Daeyoun Kim)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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