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의 세계] ④낭떠러지 절벽, 눈덮인 빙판 달리는 예측불가 랠리 '월드랠리챔피언십'

민서연 기자 2021. 7.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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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성능·내구성 좋아야 승리..양산차 개조해 참여
현대차, 2019년 처음 종합 우승 차지..도요타와 경쟁
2021 WRC 북극 랠리에 참가중인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9년 세계 3대 모터스포츠로 꼽히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 사상 처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현대차가 처음 모터스포츠 무대에 출전한 지 21년 만이다.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높지 않은 국내에서는 “포뮬러원(F1)도 아닌데 대단한 일이냐”는 반응도 나왔지만, 험난한 지형과 극한의 날씨를 견디며 달리는 WRC는 F1, 르망24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정상급 모터스포츠 경기다.

WRC는 국제자동차연맹(FI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의 주최로 1973년 시작됐다. 월드랠리라는 이름답게 유럽부터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랠리 경주를 펼친다. 랠리는 정제된 도로 위에서 수 바퀴를 도는 서킷 경주와 달리 지정된 출발점과 도착점의 경기 구간을 한 번에 주파하는 경기 방식으로, 주행 중 외부 환경 영향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차와 드라이버에 가해지는 충격이 보다 혹독하다.

2020 WRC에서 제조사 부문에서 우승한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1980년대까지만 해도 랠리 경기에서는 차량 개조에 제한을 거의 두지 않았다. 차의 주행 속도를 높여 박진감을 높이고 경기가 더 많이 흥행하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참가 차량의 출력과 배기량이 경쟁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금의 규정이 자리 잡았다.

현재 적용되는 WRC 규정에 따르면 터보 1600㏄ 이하 엔진, 전후방에 맥퍼슨 스트럿 식 서스펜션만이 허용되며, 엔진 회전수가 8500rpm을 넘어선 안 된다. WRC에서 경주차는 경기 내내 평균 시속 160~180㎞, 회전수 7000rpm을 유지하며 한계 상황으로 작동한다. 가혹한 조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WRC 경주차의 엔진 내구 범위는 7500㎞ 정도로 짧게 제한된다.

WRC는 기록경기로, 모든 참가 차량이 동시에 출발하는 방식 대신 한 팀씩 개별 기록을 측정한다. 매년 시즌에는 13~14회의 국가별 랠리가 있고, 랠리 당 약 2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다. 이 스테이지에서 참가팀은 시차를 두고 출발해 한 팀씩 주행시간을 기록하고 총합계 시간이 가장 짧은 차량이 우승하게 된다. 다른 선수들과의 신경전을 벌이거나 부딪칠 일 없이 오직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국가에서 랠리가 끝나면 해당 랠리 순위 10위까지의 드라이버에게 차등 점수가 부여된다. 각 국가의 랠리에서 얻은 점수들을 총 합산해 한 시즌 최고의 선수를 뽑는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십(Drivers’ World Championship)’과 최고의 제조사를 뽑는 ‘매뉴팩처러 챔피언십(Manufacturers’ Championship)’이 결정된다.

WRC의 가장 큰 특징은 변수 투성이인 극한 상황이다. WRC는 12월을 제외한 모든 달, 즉 사계절 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나라별 정해진 스테이지를 주행한다. 비포장도로부터 험악한 산지, 눈이 쌓인 빙판길까지 다양한 상태의 코스가 펼쳐지는데, 참가 차량은 영하 2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다양한 환경을 견디며 가장 빨리 코스를 주파해야 우승할 수 있다.

2021 WRC 사파리랠리./연합뉴스=EPA

F1 월드 챔피언십 드라이버 부문에서 총 7회 우승으로 ‘F1 황제’로 불리는 미하엘 슈마허는 “WRC 레이서가 F1 차량을 모는 것이 F1 레이서가 WRC 차량을 모는 것보다 쉽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제된 서킷에서 고속에 집중하는 F1과 달리 고려해야 할 상황이 그만큼 많은 레이스라는 것이다. 실제로 F1 월드 챔피언인 키미 라이코넨은 WRC에 도전했으나 높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채 F1으로 복귀하며 “랠리가 F1 복귀에 도움이 됐다”라고 했다.

경기 방식이 이렇다 보니 WRC 경기는 타 경기에 비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사파리 랠리에서는 푸른 들판과 홍학 떼를 배경으로 달리기도 하고 낭떠러지가 보이는 절벽코스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구간도 있다. 주행 중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들도 마주하게 된다. 일반도로에서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관람이 자유로워 코스에서 이탈하거나 전복된 차를 관중들이 도와 코스로 복귀하는 일도 WRC에서는 종종 볼 수 있다.

WRC 랠리에 참가 중인 코드라이버와 페이스노트. /WRC 유튜브 캡처

WRC 경주차량에는 두 사람이 탑승한다.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동료 드라이버)다. 정해진 서킷을 도는 시합이 아니라 구간별 특징이 천차만별인 코스를 주파하는 장거리 주행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코스의 상태를 드라이버에게 알려주는 코드라이버의 역할도 중요하다. 코드라이버는 단순 경로에 대한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코너의 방향과 웅덩이 등 도로의 컨디션, 세분된 각도까지 기록해 평균 시속 160~180㎞로 달리는 드라이버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수행한다.

랠리에 참가하는 두 드라이버는 주행실력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엔지니어로서의 능력도 필요하다. 서킷을 도는 동안 피트스톱에서 정비할 수 있는 F1과 달리 WRC 랠리 코스에는 정비소가 없다. 이 때문에 랠리 중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두 드라이버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랠리카 내에 스페어타이어와 응급 정비 도구가 실리는 이유다. 2014년 시즌 당시 현대팀의 간판 드라이버 티에리 누빌은 부족한 냉각수를 맥주로 채워 넣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냉각수 부족으로 맥주를 채워넣는 기지를 발휘한 티에리 누빌. /유튜브 캡처

경주용 프로토타입 차량으로 참가하는 일반 레이싱들과 달리 WRC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개조한 차량으로 참여한다. WRC 참가 차량 기준은 연간 2만5000대 이상 생산하고 일반도로에서 주행 가능한 양산 차량을 기반으로 개조된 차량이다. 이 때문에 랠리에 참가한 차량을 소비자가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역대 메이커별로 참가 차량을 보면 미니(MINI) 쿠퍼, 폭스바겐 골프, 현대차 i20 등 익숙한 차들이 많다.

차량을 정비하고 있는 현대모터스 WRC팀. /현대자동차

외관은 해당 모델의 양산형을 기본으로 하지만, 랠리카 내부 부품은 레이싱 전용 부품들이 탑재된다. 하지만 기본 차체와 파워트레인 등 제조사의 기술이 들어가고, 레이싱에서 획득한 데이터를 통해 다음 양산차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대회 참가는 결국 소비자들이 보다 고성능 차량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현재 쓰이는 터보차저와 사륜구동 등 기술도 레이싱에서 먼저 시작됐다.

F1에 미하엘 슈마허가 있다면 WRC에는 세바스티앙 로브가 있다. 로브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9년 연속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WRC 카레이서’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3년부터는 풀타임 참전 은퇴를 선언하고 스케줄에 맞춰 스팟 참전만 하고 있다. 최다 매뉴팩처러 챔피언십 우승팀은 역대 10회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의 완성차 제조사 란치아이며 2위는 8회 우승을 차지한 시트로엥이다.

랠리가 끝난 후 인터뷰 중인 세바스티앙 로브. /현대자동차

올해까지 WRC에 참가하고 있는 글로벌 제조사는 도요타, 포드, 현대차다. 랠리 명문팀으로 불리던 프랑스 제조사 시트로엥은 팀 대표 챔피언인 세바스티앙 오지에가 팀을 떠남에 따라 2020년 시즌부터 WRC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최진욱 현대차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는 “WRC가 F1에 비해 비용이 적다 해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홍보 효과를 따져봤을 때 운영상 비용 부담을 느끼는 팀들이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는 1999년부터 WRC에 베르나(수출명 엑센트) 등 차량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참가해왔으나 투자대비 높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04년 철수했다.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직접 팀을 꾸릴 계획을 하고 당시 남양연구소에 있던 WRC 지원팀을 독일 뤼셀스하임 R&D센터로 옮겨 WRC 도전을 준비했다.

이후 10년 뒤인 2013년 12월, 현대차는 본격적으로 팀을 결성해 2014년 시즌에 10년 만에 복귀했고 2019년과 2020년 WRC 제조사 챔피언에 등극했다. WRC에서 한 팀이 2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2019년과 2020년에는 현대팀에 소속돼 지난해 터키랠리에 참전했던 크리스티앙 로브는 현대팀에 대해 “앞으로 몇 년 동안 제조사와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모두 따낼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2021 WRC 랠리 맵. /FIA 사이트 캡처

올해 시즌은 지난 17일 7차전인 에스토니아 랠리까지 마친 상황이다. 이번 시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도요타와 현대차가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도요타가 현대차를 상당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에스토니아 랠리 기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드라이버는 148점을 획득한 도요타의 세바스티앙 오지에이며, 제조사 순위 기준으로 1위인 도요타는 315점으로 현대차에 59점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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