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그때처럼.. 바람에 실려온 감성

정혁준 2021. 7.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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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김현철의 바람이 분다]
동아기획 소속 가수들의 재회
9월, 같은 곳에서 나란히 공연
공통 주제 '바람'으로 라이브 선사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바람

‘불어오라 바람아/ 내 너를 가슴에 품고/ 고통의 산맥 위에서/ 새바람이 될지니’(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니가 내게로 다가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김현철 ‘시티 브리즈 & 러브 송’)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을 것만 같은 가수 한영애와 김현철에게 같은 ‘바람’이 분다. 어떤 바람일까?

■ 한영애·김현철의 ‘바람’의 바람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 논현동에 있는 한 공연기획사 사무실. 한영애와 김현철이 만났다. 2017년 8월 조동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서 만난 뒤 거의 4년 만이다. 한영애는 김현철을 ‘현철!’이라고 불렀고, 김현철은 한영애를 ‘누나’ 또는 ‘누님’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9월에 나란히 같은 장소(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공연을 한다. 김현철은 1~2일 ‘시티 브리즈 & 러브 송’이란 문패로, 한영애는 3~4일 ‘불어오라 바람아’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다. 이 콘서트들은 노래를 만든 이유와 배경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라이브 공연이다. 가수와 관객이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영애는 2집 <바라본다>와 4집 <불어오라 바람아>에 실린 노래 위주로 콘서트를 진행한다. 2집 ‘누구 없소?’ ‘바라본다’와 4집 ‘불어오라 바람아’ ‘너의 이름’을 중심으로, 노래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풀어놓는다.

김현철은 6월에 낸 11집 앨범 <시티 브리즈 & 러브 송>에 들어간 노래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앨범 제목에 나온 ‘산들바람’(Breeze)처럼, 김현철 특유의 산뜻하고 세련된 노래와 함께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며 진행한다.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얘기도 함께한다.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콘서트 포스터. 사운드프렌즈 제공
김현철 ‘시티 브리즈 & 러브 송’ 콘서트 포스터. 사운드프렌즈 제공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람’이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일 수 있고, 뭔가를 원하는 ‘바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기몰이하는 ‘바람’일 수도 있겠다.

한영애의 바람은 무엇일까? “고난과 역경을 바람으로 표현했다. 고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함께 이겨내 극복의 바람을 만들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김현철의 바람은 무엇일까? “큰 바람이 있는 게 아니다. 도시의 산들바람처럼 그저 듣기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심사위원이다. 15일 저녁 첫 방송을 탄 <한국방송>(KBS 2TV) ‘우리가 사랑한 그 노래, 새 가수’에서 심사위원으로 함께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1970~90년대 히트한 명곡들을 새롭게 부른 ‘새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선후배 음악가가 작사·작곡한, 더구나 타인이 부르는 노래를 평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물어봤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걸까? 매혹적인 가사를 많이 쓴 한영애는 이렇게 얘기했다. “노랫말이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발음하고 단어를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를 본다. 물론 그것 하나만 보는 것은 아니다. 발음이 안 좋아도 다른 기량이 뛰어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 스스로 프로 가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은 어떨까? “노래를 얼마만큼 자신에게 맞게 소화했는지를 본다. 노래는 기존에 나와 있는 거니, 자신의 기량에 맞게 부르는 게 중요하다. 같은 재료를 놓고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또 닮은 점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80·90년대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음반기획사 동아기획 소속이었다. 하지만 동아기획을 추억하는 결은 살짝 달랐다.

한영애의 추억이다. “처음 동아기획은 들국화, 한영애, 김현식, 이렇게 3명이 전부였다. 그러다 가수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실력은 있지만, 텔레비전에 안 나오는 가수가 대부분이었다. 대신 앨범과 공연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였다.”

동아기획 막내였던 김현철이 그 추억을 이었다. “누님은 초기 멤버여서 평가가 짜다(웃음). 제겐 동아기획이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한영애, 조동진, 시인과 촌장, 김현식, 들국화. 제가 좋아한 가수가 몽땅 그곳에 있었다. 음반을 동아기획에서 반드시 내고 싶었다.”

김현철이 한영애의 추억을 건드렸다. 한영애는 동아기획의 끈끈한 우정을 떠올렸다. “제 2집에 들어간 ‘바라본다’를 녹음할 때였다. 연락도 안 했는데 전인권, 김현식 등이 줄줄이 와서 코러스를 불러줬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현식이가 코러스를 부르는 걸 사진으로 찍었다. 제일 높은 음을 전인권이 불렀다. 자발적인 품앗이였다.”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 한영애·김현철의 ‘바람’의 바람은

이젠 서로 다른 얘기를 할 차례다. 사실 한영애는 ‘아침이슬 50주년’을 맞아 발매한 김민기 헌정 앨범의 아이디어 제안자였다.

한영애는 그 시작이 ‘케네디센터 아너스’(미국의 문화예술 분야에 업적을 남긴 인물에게 주는 공로상)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케네디센터 공로상 프로그램을 봤다. 우리도 그런 상을 만들어 올곧게 음악을 해온 사람에게 수여해 그 사람을 재조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신중현 선생님, 가깝게 김민기 선배가 떠올랐다.”

한영애는 김민기와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1993년께 갑자기 김민기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노래에 코러스를 넣어야 하는데, 일단 한번 와봐’라고 했다. 김민기 3집에 들어간 ‘기지촌’이었다. 노래를 들어보니 멜로디에 빈틈이 없었다. 제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왜 저를 부르셨나요’라고 했다. 김민기 선배는 대답이 없었다.”

한영애의 겸손이다. ‘기지촌’에서 김민기의 내뱉는 읊조림은 한영애의 애달픈 목소리를 만나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한을 머금은 듯 외치는 한영애의 스캣(가사 없이 음을 흥얼거리는 창법)과 쓸쓸한 허밍 역시 이 노래를 살린다. 김민기는 잘 선택했고, 한영애는 잘 불렀다.

한영애는 김민기 헌정 음반에서 ‘봉우리’를 불렀다. 이 노래는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메달을 못 따 선수촌에도 못 남고 도중에 집으로 돌아온 이들의 사연을 다뤘다. “어휴, 독백이 3분의 1이었다. 김민기 선배처럼 잘 부를 수 없었다. 다만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적인 선율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

역시 겸손이다. 연극배우 생활을 했던 한영애는 ‘봉우리’에서 연극 모놀로그처럼 또는 동화처럼 자연스럽게 얘기하며 노래를 부른다.

김현철. 에프이앤미(Fe&Me) 제공

■ 한영애·김현철의 ‘바람’의 바람은

이젠 김현철이다. ‘시티 브리즈 & 러브 송’은 2년 만의 신작이다. 발라드 없이 산뜻한 시티팝으로만 꾸몄다.

1989년 <김현철 Vol.1>로 데뷔한 김현철은 감각적인 멜로디와 세련된 감성의 시티팝을 선보였다. 앨범 전곡을 김현철 혼자 작사·작곡·편곡했다. 20살 어린 나이였고, 앨범에는 고등학생일 때 작곡한 곡도 있어서 이슈가 됐다.

시티팝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절 유행한 음악이다. 소프트 록, 퓨전 재즈, 라틴 재즈 등에서 영향을 받은 세련되고 도시적인 분위기의 노래다.

시티팝은 몇년 전부터 ‘뉴트로 바람’을 타고 역주행하며 김현철 1집 노래가 다시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1집의 ‘오랜만에’는 20대 힙합가수 죠지가 2019년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에는 커피 브랜드 광고에도 쓰였다. 같은 앨범의 ‘춘천 가는 기차’에 가려 묻혔던 노래였다.

김현철은 “(이번 앨범은) 시티팝 유행에 편승하려고 만든 앨범은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에서 시티팝이라고 소개하지만, 저는 시티팝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스크림 이름인 줄 알았다(웃음). 이 앨범의 노래는 1집 때의 감성과 닮았다. 거기에도 바람, 도시, 사랑의 감성이 담겼다. 의도한 건 아닌데 만들고 보니 ‘그런 감성이 있었네’라고 느낀다.”

김현철은 ‘춘천 가는 기차’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재수할 때였다. 5월5일 어린이날이었다. 집에는 독서실 간다고 하고, 여자친구와 청량리 시계탑에서 만나 경춘선을 탔다. 대학생들이 엠티를 갈 때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재수할 때 춘천은 대학생들이 가는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춘천까지 가기가 겁나 강촌에서 내려 놀다가 집에 갔다.”

새 앨범은 어떨까. “여름에 듣기 좋고, 가사가 전혀 심각하지 않다. 가사에 ‘사랑한다’는 말도 넣지 않았다. 그저 설레고 두근대는 기분을 표현했다. 심각하지 않게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 새 앨범은 그의 상징인 브라스(금관악기) 연주가 녹아 있다. 기타와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가볍지만, 깨끗하고 청량하다. 일상 언어로 쓴 산들바람과 같은 가사도 인상적이다.

한영애와 김현철이 15일 강남 논현동의 한 공연기획사 사무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상대 노래 가운데 가장 좋은 걸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한영애는 ‘춘천 가는 기차’를 선택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미 춘천에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춘천 가고 싶은 분은 꼭 들으셨으면 좋겠다.”

김현철은 한영애의 ‘호호호’를 택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걸 ‘호호호’로 표현했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보다 ‘호호호’ 하는 게 더 아름답고 듣기도 좋은 것 같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김현철. 에프이앤미(Fe&Me) 제공
한영애와 김현철이 15일 강남 논현동의 한 공연기획사 사무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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