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싫다" 여자 체조 선수들의 반란

박소영 입력 2021. 7. 26. 00:04 수정 2021. 7. 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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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발목까지 가린 유니폼 입어
어린 선수 성적 대상화 막는 효과
비치핸드볼도 비키니 대신 반바지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긴 바지를 입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사진 파울린 쉬퍼 SNS]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다른 팀 선수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등장했다. 몸통에서부터 발목 끝까지 가리는 유니타드였다. 보통 기계체조 선수들은 원피스 수영복 모양인 레오타드를 입는다.

팔다리가 전부 노출되는 의상과 달리 독일팀의 유니타드에는 절제미가 느껴졌다. 이번 대회에서 이런 의상을 입은 여자 기계체조 팀은 독일뿐이었다. 독일팀의 파울린 쉬퍼는 23일 소셜미디어(SNS)에 올림픽 훈련 사진을 올리며 “우리 팀 새 옷이 어떤가?”라고 물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국제체조연맹(FIG)를 비롯해 1만30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이 레오타드 대신 유니타드를 선택한 건, 여자 체조 선수들을 성적 대상화로 보는 시선을 막기 위해서다. 여자 체조 선수들은 높고 폭이 좁은 평균대에서 옆돌기를 하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온몸으로 고난이도를 선보인다. 품이 넉넉한 옷은 난도 수행에 방해가 돼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을 입는다. 그런데 이 의상으로 인해 그들의 기술보다는 몸매에 관심을 더 보이는 사람들이 생겼다.

독일팀은 이런 흐름이 지난 2018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미국 전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적 학대 스캔들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나사르는 미국 체조선수 150여명을 약 30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최고 징역 175년형을 받았다. 미국인들이 보물로 여기는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까지 피해자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영국 BBC는 ‘독일체조연맹은 나사르 사건을 보고 체조의 성적 대상화를 반대하기 위해 의상을 바꿨다’고 전했다. 독일팀 사라 보시는 “여자 기계체조는 18세 미만의 어린 선수들이 주로 경쟁한다. 생리를 시작하고 사춘기가 되면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레오타드를 입은 게 불편하다. 어린 선수들이 우리 의상을 보고 용기를 내서 (유니타드를) 입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대표팀. [사진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SNS]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선수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를 입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18일 불가리아에서 끝난 유럽비치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반바지를 입어 유럽비치핸드볼협회 징계위원회로부터 벌금 1500유로(200만원)를 부과 받았다.

비치핸드볼은 비치발리볼처럼 모래 위에서 열리는 핸드볼 경기다. 여자 선수들은 경기할 때 비키니 한 벌을 착용해야 한다. 하의 길이는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반면 남자 선수는 무릎 위 10㎝까지 내려온 반바지를 입는다. 노르웨이핸드볼협회는 여자 선수들의 반바지 착용을 옹호했다. 협회는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는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선택할 기준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너무 짧은 바지를 입었다고 지적당한 여자 선수도 있다.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할 예정인 영국의 장애인 멀리뛰기 선수인 올리비아 브린은 지난 18일 자신의 SNS에 “영국선수권대회에 참가했는데 대회 관계자로부터 짧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지적당했다.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전문 스포츠 의류 업체가 제작한 바지를 수년 동안 입고 있다. 남자 선수들도 이런 비판을 받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24일 워싱턴포스트는 “지금은 21세기다. 여자 선수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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