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불멸을 쐈다

이준희 2021. 7. 2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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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여자 양궁 단체전 '올림픽 9연패'
첫 출전 강채영·장민희·안산
러시아올림픽위에 6-0 압승
88올림픽이래 불패행진 이어가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 장민희, 강채영 선수가 25일 일본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금-금-금-금-금-금-금-금-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대기록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한국 선수단에 두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1988 서울올림픽 때 양궁 단체전이 시작된 이래 아홉 차례 치러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양궁은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다. 도쿄에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보다도 눈이 부셨다.

여자 양궁 대표팀 강채영(25), 장민희(22), 안산(20) 선수는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난적’ 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세트스코어 6-0(55:53/56:53/54:51)으로 꺾었다. 러시아는 과거 도핑 샘플 조작 문제가 드러나 이번 대회에 러시아올림픽위로 참가했다.

이로써 한국은 여자 양궁 단체전 9연패라는 대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한국은 1988 서울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시작된 이래 바르셀로나·애틀랜타·시드니·아테네·베이징·런던·리우데자네이루 대회를 모두 제패한 것에 이어 도쿄에도 태극기를 꽂게 됐다. ‘여자 양궁은 무조건 금메달’이라는 부담을 이겨내고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이날 경기에 나선 대표팀 선수 모두 이번 대회가 첫 올림픽 도전이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라는 부담감은 전혀 없는 듯했다. 오히려 경기 내내 웃음꽃이 피어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경기력도 압도적이었다. 대표팀은 8강에서 이탈리아를 6-0으로 완파했고, 4강에서는 일본을 꺾고 올라온 벨라루스를 5-1로 꺾었다. 결승전도 6-0 완승이었다.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승리다. 양궁 단체전은 세트를 따내면 2점, 비기면 1점을 부여한다.

철저한 훈련이 빛을 봤다. 대표팀은 지난겨울부터 유메노시마 양궁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선수촌 내 전용 훈련장에서 매일 같이 특훈을 했다. 지진 등 특수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정신적 훈련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외부 출입은 물론 외부인과의 접촉도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올림픽 단체전 9연패의 대기록을 쓴 여자 양궁 대표팀 안산(왼쪽부터), 강채영, 장민희 선수가 25일 오후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의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실력도 탄탄한 만큼 미래도 기대된다. 특히 신체조건과 힘이 좋은데, 류수정 양궁대표팀 감독은 “한국 여자 양궁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강채영(171㎝), 장민희(175㎝), 안산(172㎝) 등 세 선수가 모두 신장이 170㎝가 넘는다. 과거 ‘신궁’으로 뽑힌 이들은 기보배(168㎝)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균적인 키였다.

류 감독은 “키가 큰 만큼 다들 힘도 좋아서 강채영과 장민희 등은 무거운 남성용 활과 화살을 써서 흔들림이 적다”고 설명했는데, 특히 이날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는 도쿄만에 조성된 인공섬으로 바닷바람이 강해 이런 대표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됐다. 남은 여자 개인전도 유메노시마에서 열리는 만큼, 큰 이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선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안산은 도쿄올림픽 첫 2관왕에 올랐다. 30일 열릴 여자 개인전에서는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에도 도전한다. 안산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에 오르며 가까스로 대표팀 막내로 승선했지만 특유의 강한 정신력으로 한국 선수 중에 가장 먼저 2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는 그의 주문이 개인전에서도 통할지 주목된다.

전망은 밝다. 안산은 앞서 23일 열린 여자 개인 예선 랭킹라운드(순위결정전)에서 72발 합계 680점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쓰며 이미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본선 참가자 64명 가운데 1위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자신감도 넘친다. 안산은 대회에 참가하며 “목표는 1위”라고 밝혔고, 혼성전에서 우승한 뒤에는 “다시 한번 애국가를 듣겠다”는 희망도 밝혀왔다.

안산이 이미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한 만큼,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는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유의 ‘포커페이스’가 강점이라는 평가다. 류수정 감독은 “요즘에는 외국 선수들도 (실력이 많이 좋아져) 한국 여자 양궁 선수를 보고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산이(안산)를 보면 겁을 먹고 심리적으로 눌리는 모습을 보인다. 워낙 활을 거침없이 쏘는데다, 포커페이스 유지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산은 24일 혼성 단체전 때도 차분한 모습으로, 연신 “파이팅!”을 외치는 김제덕(17)과 비교되기도 했다. 마치 얼음(안산)과 불(김제덕) 같은 모습이었다.

대표팀 주장 강채영도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16 리우올림픽 대표팀 낙마의 아쉬움을 훌훌 털게 됐다. 강채영은 당시 세계랭킹 1위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단 1점 차이로 4위를 기록하며 탈락의 아픔을 겪은 바 있다. 대표팀 둘째인 장민희도 이날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는 양궁 개인전에서 대회 2관왕을 노린다.

한편 남자 양궁 대표팀은 26일 같은 장소에서 단체전 금메달에 도전한다.

도쿄/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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