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편견 부추기는 올림픽 TV중계

2021. 7. 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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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올림픽 경기의 TV 중계는 지난 1936년 처음으로 이뤄졌다. 손기정 선수가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마라톤에서 우승, 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을 일깨운 바로 그 베를린 올림픽이다.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기회로 올림픽 경기의 TV 중계를 기획했다. 주경기장의 경기장면을 촬영하여 베를린과 라이프찌히, 포츠담 등의 28곳 극장에서 보여줬다.

히틀러는 독일 선수들이 유대인과 흑인 등을 압도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흑인선수 제시 오웬스가 육상 100m, 200m, 멀리뛰기에 이어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 흑인 4관왕 탄생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늦게 지난 23일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대회는 하루하루 위태롭게 진행 중이다. 응원하는 관객이 없는 무관중 경기가 대부분이다. 경기하는 선수 외에는 모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멈췄던 일상을 회복하려는 각국 선수들의 경쟁은 아름답다.

올림픽 경기는 전 세계인의 75% 이상이, TV가 있는 가정의 90% 이상이 시청하는 메가 이벤트이다. 세계인들은 TV로 중계되는 올림픽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언어, 종교, 문화를 접하게 된다. 평소에 몰랐던 국가들,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국제뉴스 보도가 그러하듯 올림픽 중계 역시 국가의 위상과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미국 NBC방송의 중계내용을 분석했더니 중국과 러시아, 영국 등 서유럽 국가 등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 등은 획득한 메달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육상 100m와 비치발리볼, 수영, 테니스 등도 많이 중계됐다.

반면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은 획득한 메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언급됐다. 대한민국 선수의 활약은 미국 선수와 맞대결이 없으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다른 국가에서도 TV중계는 경쟁에 나선 자국 선수 중심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은 각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이나 메달 실적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 고르게 방송된다. 그렇기에 많은 국가에서는 올림픽 개막식에 국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뽐내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기니비사우, 상투메프린시페, 산마리노, 지푸티, 세이셜, 세인트빈센트, 투발루 등 이름조차 생소한 국가들도 많이 참여, 존재감을 보였다. 메달과 상관없이 올림픽 참여를 하나의 국가적 행사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개막식 중계에서 MBC TV는 우크라이나를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사진을 넣어 소개해 비난을 받고 있다. 루마니아 소개는 드라큐라 사진으로, 엘살바도르 소개는 비트코인 현수막 사진으로 희화화했다. 아이티는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까지 내보냈다. 취중농담으로도 불편한 편견들의 연속이었다.

국내 방송사의 올림픽 중계는 성차별적 해설로도 유명하다. 2016년 국내 지상파 방송의 올림픽 중계에서는 "피아노도 잘 치고 펜싱도 잘하고, 무슨 서양의 양갓집 규수같은 조건을 갖춘 선수"라고 선수를 소개하고, 양궁선수에게는 "착하고 활도 잘 쏘니까 일등신부감 아닐까요"라는 성차별적 발언들도 쏟아졌다. 이번 올림픽 중계에서는 어떤 성차별 설명이 나올지 벌써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실 120년 올림픽 역사는 남녀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다. 여성의 참여는 지난 1900년 파리 올림픽의 테니스와 골프로부터 시작해 양궁, 수영, 다이빙, 펜싱 등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21세기 들어와서 2000년 태권도를 시작으로 레슬링(2004년), 권투(2012년), 럭비 (2016년) 등에서 여성 참여가 이뤄졌다. 여기에는 올림픽 중계를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시청한다는 사실도 고려됐다.

이번 도쿄 올림픽의 모토는 '감동으로 하나되기'(United By Emotion)이다. 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은 성(gender)과 피부색, 언어, 종교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통해 인간의 능력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이를 편견 없이 중계하고 시청하는 것, 그것이 올림픽 정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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