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 칼럼] 리쇼어링, 지금이 적기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된 방역 통제에 연명하다시피 해 왔는데 이제는 공장을 돌리려 해도 직원용 숙소에 백신까지 구해줘야 가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로부터 도움도 못받는 상황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 인근 빈즈엉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지인과의 며칠 전 통화내용이다. 1년 반 이상을 현지정부의 막무가내식 방역통제에도 근근이 버텨 왔는데 최근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전면통제 상황까지 닥치자 모든 걸 포기하고 귀국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현지 거주하는 우리 교민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가족도 모른 채 화장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야반도주가 생각날 정도로 의기소침해졌다고 푸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들의 고초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의 제조 공장이 집중적으로 나가 있는 중국, 동남아 등의 주요 지역에서는 이른바 '보따리를 싸야 하나'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해외진출 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생산기지 본국회귀) 문제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 싼 지대, 상대적 우대정책, 산업요소 비용의 우위와 효율성, 미래 성장시장의 선점 용이성, 재고 최소화 및 적시생산 등 갖가지 이점에 기업들은 중국, 동남아 등지로 계속 이전해 왔다.
리쇼어링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내 제조업 경기 활성화와 일차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을 전개해 왔다. 우리 정부도 2014년 관련 입법을 통해 국내 복귀기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내 시장의 한계는 물론 인력 수급, 인건비, 생산현장 규제, 지대, 국내 공급망의 불안정성 등 다양한 이유가 깔려 있다. 여기에 정부의 유인책이 기업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크다.
코로나19사태를 거치면서 리쇼어링에 대한 기업들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산업생태계(GVC)가 무너지면서 현지의 불특정 리스크를 굳이 감당할 필요가 있냐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개도국 진출 기업들은 급작스레 닥치는 현지 비상사태 때 그 나라 정부의 선별적 보호는 커녕 차별적 피해를 경험했다.
과거 사드사태 때 중국에서 우리 기업들이 겪은 좌절감이 대표적이다. 미얀마에 있는 200여 의류·봉제 업체들은 코로나사태에 군부 쿠데타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대지진 등과 같은 천재지변, 정치·사회적 혼란, 국가적 사변 등이 닥치면 살얼음판 위에 홀로 선다.
개도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불투명하고 낙후된 기업 환경, 문화적 이질성, 불안정한 정책 및 정치·외교적 환경, 천재지변 등 돌발변수에 항상 노출돼 있고 이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는 모험가들이다. 입지상 약간의 상대적 비교우위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마다않는 진취성을 발휘해온 전사들이다.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학적 위험과 이동의 제약 속에서도 그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환경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확산된 자동화, 스마트화로 현장 인력수급 문제가 극복 가능한 수준으로 해소될 전망이다. 기업들의 활동 또한 안정추구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도 해외진출 기업들의 회귀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외에 있는 많은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일 것인가. 두말 할 것 없이 정부가 산업생태계를 보다 더 유연하고 비교우위적으로 만드는 정책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국내 일자리 창출과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라도 '리쇼어링'은 현 시점에서 중요한 화두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격변기 속에서 확실한 기업 유인 요인은 이미 있으니 이젠 정부가 나서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차상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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