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 경례' 미얀마 축구선수, 일단 일본 프로팀이 품는다

김동현 기자 2021. 7. 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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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일본 지바현에서 일본과 미얀마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렸다. 미얀마의 국가(國歌)가 울려 퍼질 때 골키퍼 피리앤 아웅(27)이 세 손가락을 펴고 있다./방송 캡쳐

“언젠가 미얀마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일본에서 배운 축구를 가르치고 싶어요”

월드컵 축구 예선 경기에서 ‘세 손가락 경례’로 귀국을 거부했던 미얀마 축구 대표팀 선수가 일본 품에 안길 전망이다. 일본 내에선 도쿄올림픽 중에도 난민 신청을 할 선수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 “어떻게 대응할지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선수는 일본에서 6개월간 머무를 자격을 얻고, 한 프로축구팀에 연습생 신분으로 정식 입단했다.

지난 5월 28일 일본 지바현, 일본과 미얀마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경기 시작 전 미얀마의 국가(國歌)가 울려 퍼지는데, 골키퍼 피리앤 아웅(27)이 세 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으로 송출됐다. ‘세 손가락 경례’는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주인공이 보인 동작이다. 5개월 이상 군사 쿠데타 반대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미얀마 시위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피리앤은 세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국 거부 의사를 전 세계에 알렸다.

미얀마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군부 쿠데타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위가 5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AFP연합뉴스

장장 26시간의 ‘대탈출 작전’이 펼쳐졌다. 오사카의 한 미얀마인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난민법 전문 변호사 등 다른 조력자도 나타났다. 피리앤은 조력자들과 상의 끝에 두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귀국 날이 됐고, 지난달 16일 공항으로 향했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데, 일본 당국자가 피리앤을 별실로 인도했다. 피리앤은 일본 정부에 보호조치를 요청했다. 끝내 조력자들과 만났고, 탈출 작전은 성공했다.

탈출 작전 후 한 달여 지났다. 피리앤은 오사카의 한 자택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 2일 그는 6개월간의 일본 재류와 취업 활동이 가능하도록 당국에 등록됐다. 긴급 피난 조치로 ‘특정활동’ 비자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피리앤 아웅(27)이 일본 프로축구 J3리그 YSCC 요코하마 팀에서 훈련하고 있다./간사이TV방송 캡쳐

소속팀도 생겼다. 교도 통신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피리앤은 지난 23일 일본 프로축구 J3리그 YSCC 요코하마에 연습생 신분으로 영입됐다. 지난 7일부터 3일 동안 훈련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팀 구단주 요시노 지로(56)가 “(그에게)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며 먼저 의향을 밝혀 온 것으로 전해졌다. 1986년 만들어진 YSCC 요코하마는 ‘공으로 세계 평화를’이란 슬로건으로 개발도상국에 스포츠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피리앤은 이른 시일 내 오사카에서 요코하마로 자택을 옮기고 프로팀 연습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피리앤 아웅(27)이 일본에서 6개월 동안 인정받은 재류카드를 보이고 있다./간사이TV방송 캡쳐

피리앤은 자신을 거둬준 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간사이 TV 방송 뉴스에 따르면, 피리앤은 “일본 축구의 레벨은 높다”며 “나를 거둬주는 곳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서 축구를 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언젠가 미얀마에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일본에서 배운 축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피리앤은 지난달 하순 일본 정부에 신청한 난민 인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일본에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47명으로, 전체 신청자의 1%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에 따라, 일본은 피리앤처럼 귀국을 거부하고 난민 신청을 할 선수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6일 우간다의 역도 국가대표 줄리어스 세키톨레코(20)가 ‘우간다에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는 메모를 남기고 호텔을 떠나 잠적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20일 발견된 줄리어스는 경찰에 ‘난민 신청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주(駐)일 우간다대사관은 줄리어스를 귀국시키겠단 계획을 일본 정부에 알렸다.

지난 23일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미얀마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 난민들을 지원하는 NPO(비영리 민간단체) 법인난민지원협회는 2020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막과 함께 상담자가 증가할 것을 고려해 직원과 공간을 더욱 확보했다. 일본 정치권도 우려를 표했다. 도쿄 스포츠에 따르면, 한 일본 정치권 인사는 “같은 일이 (도쿄올림픽 선수 중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미얀마 선수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선수 중에도 피리앤처럼 귀국을 거부하고 일본 정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할 선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정치적인 사정으로 귀국하고 싶지 않은 선수가 난민 신청을 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검토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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