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도 갈라먹는 소말리아 남북 대사관의 우정..패닉 극장가 살릴까, 영화 '모가디슈'

백승찬 기자 2021. 7. 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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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의 창궐을 예측하기 어려웠듯이, 남북관계의 향방도 종잡기 힘들다. 류승완 감독이 <모가디슈> 제작에 착수한 2018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기였다.

<모가디슈>는 2019년 11월 크랭크인해 2020년 2월 크랭크업했다. <모가디슈>가 후반 작업에 들어간 뒤, 전 세계는 미증유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사로잡혔고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모가디슈>의 총제작비는 255억원이다. 코로나19 이전 시기였으면, ‘1000만 관객’을 노려야 하는 제작비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모가디슈 남북 대사관 사람들의 우정을 그린 실화 기반 영화가 패닉에 빠진 극장가,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이중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남북한은 유엔 회원국에 가입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남북한이 각각 유엔 회원국에 가입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던 시기가 배경이다. 주소말리아 한국대사 한신성(김윤석)과 안기부 파견 참사관 강대진(조인성)은 소말리아 정부의 호의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수고는 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는 20년 앞선 북한대사 림용수(허준호), 참사관 태준기(구교환)에 의해 번번이 제지된다. 모가디슈에는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시위대는 독재정권에 협력한 외국 대사관까지 적대한다. 시위대에 습격당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위험한 거리를 떠돌다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린다. 한 대사는 어린이가 포함된 북한 사람들에게 대사관 문을 열어준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두 체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협력을 시작한다.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소말리아는 여행금지국가이기에, 모로코에서 100% 촬영됐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경력 초창기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짝패>(2006) 등 도전적인 액션영화를 선보였던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3), <베테랑>(2015) 등 잘 다듬어진 장르영화를 거쳐 <군함도>(2017), <모가디슈> 등 민족 문제를 다룬 서사극을 선보이는 데 이르렀다.

당시 소말리아에는 부패한 독재정권이 들어서 있었다. 외교는 선악이 아니라 실리의 문제이기에, 남북 외교관들은 소말리아 정권의 정당성이나 정의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정권의 실력자들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면서도, 한 대사는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직장인으로서 어떻게든 조직의 명령을 이행하는 동시, 개인으로서는 28년 외교관 생활의 전기를 만들어 승진하려는 욕망에 기인한다.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는 5·18 이후 한국의 민주화 시위를 연상시키지만, 북한과의 외교적 경쟁에만 몰두하는 한국 대사관 사람들에게 시위대는 피해 다녀야 하는 폭도일 뿐이다. 국제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가디슈>는 시종 한국적 시선을 견지한 영화다.

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시위대에게 습격당한 뒤 위험한 거리를 방황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말을 걸거나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금기였던 두 체제 사람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중반부부터 제시된다. 겹쳐진 깻잎을 남북 대사 부인이 갈라 먹는 등의 디테일한 묘사 속에 양측은 조금씩 감정을 나눈다. 전향을 둘러싼 오해와 다툼에도 “흘려보낼 건 흘려보냅시다”라며 실리를 추구하는 림 대사의 태도는 남북관계에 대한 제작진의 제언처럼 들린다.

반군, 정부군, 현지 타국 대사관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남북한 대사는 ‘톱다운’ 방식으로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양측 참사관이 시종 갈등을 드러내고 대사 가족끼리는 대화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 역시 시민의 총의보다는 양측 정상의 의지에 의해 계기가 만들어지는 남북 대화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굶주렸지만 자존심 강한 북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해 여유로운 ‘형님’ 이미지를 구축한다.

북한 사람들의 대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음에도 자막으로 처리됐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를린>을 만든 뒤 대사가 안 들린다는 지적을 너무 많이 들었다”며 “어린 시절에는 드라마에서 북한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북한 말을 듣는 일이 적어졌다.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소말리아에는 갈 수 없어, 모로코에서 모든 장면이 촬영됐다. 종반부의 카체이싱 장면에는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의 인장이 묻어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이 속한 한국상영관협회는 <모가디슈> 총제작비의 50% 회수를 보장하기로 했다. 통상 영화 관람권 매출은 극장과 배급사가 절반씩 나누지만, <모가디슈>는 총제작비 50%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극장이 매출을 가져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작 한국 영화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의 손실을 우려해 개봉을 꺼리고, 극장은 상영할 영화가 없어 관객도 사라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28일 개봉.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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