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07] 거북털 토끼뿔
중진 정치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종교가 뭡니까?” “기천불입니다.” “그게 뭔 종교인가요?” “기독교, 천주교, 불교입니다. 저는 이 세 종교 다 믿습니다.” 정치인은 될 수 있으면 자기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면 안 된다는 교양을 환기시켜 주는 답변이었다. 아울러 ‘기천불’의 태도가 한국에서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0~90년대의 기천불을 대표하는 3인방이 기독교는 강원용 목사, 천주교는 김수환 추기경, 불교는 송월주 스님이었다.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문제를 협의하였다. 김수환과 강원용이 먼저 세상 떠난 뒤에 혼자 남은 송월주는 외로웠다.
불교는 심산유곡에서 면벽(面壁)하는 출세간의 종교이다. 면벽도 중요하지만 입세간(入世間)의 현실 문제 참여에서 도를 닦아야 한다는 게 이번에 작고한 태공당 월주 대종사(1935~2021)의 일관된 신념이었다. 현실 문제에서 부대끼며 도를 닦아야 한다는 한국 불교 사판의 수행 노선을 대표하는 스님이 월주 대종사였다. 그의 회고록 제목도 하필 ‘토끼뿔 거북털’이었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구한다면 마치 토끼뿔과 거북털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육조단경’의 ‘이세멱보리(離世覓菩堤) 흡여구토각(恰如求兎角)’에서 뽑아낸 말이다.
현실 참여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눈물도 쏟고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괘씸죄에 걸려 당시 신임 총무원장이었던 송월주는 차가운 얼음을 23일간이나 복용해야만 하였다. 보안사 서빙고(西氷庫) 분실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전국 수백 군데 사찰에 군인들이 쳐들어가 법당을 짓밟고 승려들을 잡아가는 1980년 10·27 법난도 따지고 보면 송월주가 군사정권에 협조만 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법난 뒤에 한국을 떠나 3년간 미국과 구라파를 떠돌았다. 1994년 다시 총무원장에 선거로 복귀하였다. 해방 이후 조계종이 종정 체제로 있다가 총무원장이 실권을 갖는 총무원장 중심 체제로의 전환, 교구본사 주지를 원장이 임명하지 않고 선거로 뽑는 제도를 디자인하고 정착시킨 사람은 송월주이다.
그는 금산사 출신이었다. 8세기 진표율사 이래로 금산사는 한국 미륵사상의 진원지였다. 난세가 닥쳤을 때 그 난세에 은둔하지 않고 직접 뛰어드는 스타일이 미륵사상이다. 월주 대종사는 그 미륵의 전통을 계승한 인물이다. 거북털과 토끼뿔을 구하지 않고 사판(事判) 속에 이판(理判)이 있다는 신념대로 살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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