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님들 누가 '적통'인지가 궁금할까요? [여의도 앨리스]

탁지영 기자 2021. 7. 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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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앨리스]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경향신문]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경선 개표식에서 경선 후보로 선출된 김두관(왼쪽부터),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에선 요새 때아닌 ‘적통’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통은 적자 자손의 계통을 뜻하는 말로,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쓰였던 말입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적통’을 거론하는 이들은 바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입니다. 이들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 진실 공방을 벌이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의 사연을 공개하는 등 서로 “내가 적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 대표 선거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는데도 말이죠. 전문가들은 적통 논쟁을 “퇴행적”이라며 미래지향적 논쟁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특정 정당의 DNA가 나에게 흐른다’는 적통 경쟁, 여야 가리지 않아

적통 경쟁은 선거철마다 나왔습니다. 200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당시 여권에선 정동영 예비후보와 이해찬 예비후보가 ‘여권의 적통’임을 강조했습니다. 서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이끌어온 ‘주류’를 자처했습니다. 이들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여권으로 넘어온 손학규 당시 예비후보에겐 “살아온 길이 다르고 정책적으로도 전혀 다르다”며 정체성을 문제삼았습니다.

2007년 당시 야권에서도 이회창 무소속 후보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보수 적통’을 놓고 맞붙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없고 대북관도 애매모호하다”며 이명박 후보가 진정한 보수가 맞는지를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동시에 경북 구미에 마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으며 적자 경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후보도 아버지 분향소를 찾아 자신이 진정한 ‘박정희 적통’임을 강조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와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민주개혁진영의 적통임을 내세웠습니다. 문 후보는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마석 모란공원을 찾거나 남북문제를 주제로 한 간담회를 여는 등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2017년 대선에서도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보수 적통을 두고 경쟁했고, 당시 야권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 안희정 당시 민주당 후보가 서로 ‘노무현 적통’임을 내세웠습니다.

당장은‘집토끼’ 잡아야 하기 때문에…전문가들 “반쪽자리 정치” “선거 질 떨어뜨려” 비판

선거때마다 적통 경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집토끼’를 잡아야 ‘산토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집토끼는 당원을, 산토끼는 일반 시민을 뜻합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5일 기자와 통화에서 “경선은 투표율이 낮아 적극적인 지지층이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당원 투표가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후보들도 ‘적통 논란’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게 자신들한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어느 정당이든 자신들의 DNA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나가서 승리하길 바라기 때문에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적통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특히 민주당 본경선에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 선거인단과 당원 선거인단(대의원·권리당원)은 한 명당 1표씩 행사하게 돼 있습니다. 국민의힘의 본경선 규칙은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당원 대 일반국민 조사를 5 대 5로 반영합니다. 국민의힘은 당원과 일반국민 반영 비율이 비슷하더라도 여야 모두 국민 선거인단보다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본선으로 진출할 확률이 높은 상황은 같습니다. 김 교수는 “본선에 진출하면 후보는 재빠르게 중도 외연 확장 전략으로 바꾸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7월23일 김용민의 그림마당


강성 당원들을 의식한 경쟁이다 보니 ‘반쪽짜리 정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적통 경쟁은) 퇴행적”이라며 “적극적인 대통령 지지자만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로 축소된 게 적통 논란의 원천”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 학교장은 “한국 정당 정치가 망가지면서 대통령 개인을 둘러싼 파벌 구조가 당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며 “대통령과 당의 관계가 대통령 우위로 확립되면서 모든 정치가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싸움으로 전반기를 보내고, 이후부턴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에만 몰두하게 됐다. 이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논쟁을 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형준 교수도 “정치가 미래로 가지 못하고 정당 차원에서만 머물게 되는 것”이라며 “분명히 선거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탄핵 등 적통 논란이 왜 당 대표 선거에선 불거지지 않았나”라며 “당원들이 뽑고 오리지널이 강해야 하는 당 대표 선거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리하는 대통령 후보 선거에서 적통 논란이 나온 게 우스운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노무현을 선거에서 놓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정치 개혁을 하지 않고선 적통 경쟁을 없앨 순 없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김형준 교수는 현역 의원들이 각 후보 캠프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당내 과열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선 현역 의원들이 후보 캠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오바마파, 힐러리파 등으로 갈라지지 않는다”라며 “그런데 한국에선 후보 캠프가 작은 정당이 돼 버려 직접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정치개혁이 우선이 되지 않는 한 ‘원팀’은 만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미래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이낙연 전 대표, 지난 24일 SNS)

“적통이라는 단어는 옛날 왕세자를 정할 때 나온 이야기다. 피를 따지는 건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이재명 지사, 지난 16일 비대면 기자간담회)

적통 경쟁을 벌이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직접 밝힌 말입니다. 정책과 비전을 놓고 토론하는 모습 등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봅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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