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의 섬'의 변화

한겨레 2021. 7. 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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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이나연ㅣ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가 ‘뮤지엄의 섬’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쓰던 이가 단위면적당으로도 인구당으로도 뮤지엄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대한민국의 최남단 섬이 궁금해 급기야 리서치 여행을 온 적이 있다. 사립 미술관에 근무할 적에 이 호기심 어린 예비박사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나도 대충 많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때 제대로 알았다, 제주엔 뮤지엄으로 분류하는 시설이 정말 많다는 걸. 나비 박물관부터 아프리카 박물관까지, 헬로키티 뮤지엄에서 스누피가든까지. 미술관, 박물관, 뮤지엄, 테마파크라는 호칭을 넘나들며 제주에 정식으로 등록된 미술관과 박물관은 80개가 넘고,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유사 뮤지엄도 아주 많다.

제주가 피렌체나 파리처럼 문화 자원이 풍부해서 뮤지엄이 많아진 게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서, 다른 말로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곳이라서 이토록 뮤지엄이 많아진 것이다. 특정 주제를 정해 관련 자료들을 모아 뮤지엄을 짓고 입장객을 받아서 수익을 내는 구조의 ‘뮤지엄 사업’이 관광객을 기다리는 셈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건물 구축과 전시 연출 등을 위한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관리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중적인 캐릭터 콘텐츠로 입장료 수익을 내는 사업은 미다스의 손이다.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기획전시 없이도 안정적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수 있다. 설립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테디베어 뮤지엄은 여전히 제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그런데! 특정 주제나 소재를 잡고 관련한 작품과 자료를 모아서 보여주는 형식의 뮤지엄 연출 방식에 큰 지각변동이 일었다. 바로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다. 발전된 기술에 예술적 표현이 더해지면서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가 격변을 겪고 있다. ‘몰입형 아트’라는 새로운 표현을 내세우면서 제주에서 제일 처음 벙커 내부를 명화로 뒤덮으면서 ‘빛의 벙커’가 선전을 시작했다. 광고 전광판을 이용해 대중적 명성을 먼저 얻은 대표작 <웨이브>를 내세우며 아르떼 뮤지엄이 몰입형 아트의 인기몰이에 동참했다. 공간 전체를 프로젝터로 매핑하고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갖춰두기 때문에, 예술공간 안으로 관객이 풍덩 뛰어드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하여 몰입형 아트라 부른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의 감각기관은 제공되는 콘텐츠에 완전히 사로잡혀 푹 잠기게 된다. 단순히 작품을 눈으로 보던 방식에서, 작품에 온몸이 둘러싸여 시각과 청각과 더불어 공간감까지 체험하므로, 관객이 느끼는 자극의 강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최근에는 확장된 개념으로 ‘실감 콘텐츠’라는 말을 많이 쓴다. 실감 나는 효과를 연출하는 에이아르(AR), 브이아르(VR) 콘텐츠들을 두루 가리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전시장 공간 전체를 사용해 관객들을 둘러싸이게 연출하기로는 테이트모던의 터빈홀에서 열린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웨더 프로젝트>가 선조 격이다. 2003년 길이 152m, 높이 35m, 너비 24m의 공간에 인공안개가 깔리고 거대한 태양이 떠올랐고, 관객들은 일광욕을 하듯 공간 바닥에 누워 최초의 몰입형 아트이자 실감 콘텐츠를 체험했다.

아르떼 뮤지엄을 만든 디스트릭트가 최근 아티스트 유닛인 에이스트릭트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해외 진출 성과가 눈부시다. 오는 8월2일까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대표 전광판을 모두 활용해 높이 100m에 달하는 폭포수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조상인 엘리아손이 2008년에 설치한 폭포는 36m였으니 규모가 남다른 시도다. 다른 전광판에는 파도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고래도 소개한다. 뉴욕의 야외 명소를 순식간에 뮤지엄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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