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종교'의 값비싼 신호

한겨레 2021. 7. 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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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수도권의 종교시설 대부분은 지난 12일부터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수칙에 따라 예배, 미사, 법회 등의 정규 종교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르면, 거리두기 4단계에서 정규 종교활동의 비대면 원칙은 유지하되 보완적으로 전체 수용 인원의 10%, 최대 19명까지는 현장에 참석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종교계의 수입이 평균 20~30% 정도 줄기는 했지만 고사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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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 중인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비대면으로 주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뉴노멀-종교] 구형찬 ㅣ 인지종교학자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 종교도 비상이다. 수도권의 종교시설 대부분은 지난 12일부터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수칙에 따라 예배, 미사, 법회 등의 정규 종교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다행히 심한 갈등은 빚어지지 않았다. 많은 종교인들이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게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두가 같은 판단을 한 것은 아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몇몇 개신교단체는 대면 예배 금지가 기본권과 평등원칙을 침해한다며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서울행정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은 이를 일부 인용했고, 지난 20일에 정부는 법원 결정의 취지를 반영한 지침을 새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거리두기 4단계에서 정규 종교활동의 비대면 원칙은 유지하되 보완적으로 전체 수용 인원의 10%, 최대 19명까지는 현장에 참석할 수 있다. 침해될 뻔했던 기본권을 어느 정도 지켜낸 것이길 바란다.

평등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교회총연합’이나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와 같은 일부 개신교단체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에 가해지는 제한이 여타의 생활시설이나 영화관 같은 일반 영업시설과 비교할 때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도 백화점, 예식장, 장례식장 등의 경우와 비교하면서 인용의 이유를 설명했다. 여하간 평등을 다투는 교회의 상대가 다른 종교단체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감염병 확산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가 경영 악화, 즉 수입의 감소를 염려해서라는 세간의 설도 왠지 그럴듯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7월22일치 <한겨레> 기사에 비추어보자면, 이른바 ‘수입 감소 염려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종교계의 수입이 평균 20~30% 정도 줄기는 했지만 고사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다양한 종교 서비스의 제공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헌금이나 보시도 온라인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도 많이 줄어 비용이 절감된 측면도 있다. 특히 개신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다른 사정도 고려해봄 직하다. 종교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신자가 있어야 종교도 존재하고 성직도 의미를 갖는다. 신자들의 정기적인 참여와 봉사 없이 어떤 종교도 ‘노멀’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음악·음향·영상을 활용한 종교행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깨끗하고 편리한 식당과 화장실 등 신자들의 노동력이 투입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다. 물론 그들 가운데 금전적 대가를 받고 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취하는 보상은 돈이 아니다. 신자들은 종교단체가 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르는 특수한 지위를 획득한다. 종교들이 향유해온 현대의 ‘노멀’은 신자들의 열정 자체다. 그리고 이를 유지해온 문화적 장치가 정기적인 대면 종교활동이다.

이토록 중요한 대면 종교활동을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잠시 내려놓고 방역에 적극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교인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종교의 자유가 그들에게 덜 중요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종교적 열정이 공고하지 못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

헌신과 희생은 무임승차자를 걸러내는 ‘값비싼 신호’다. 종교 내부자의 시각에서는 대면 종교활동을 고수하는 노력도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전체 사회 구성원의 시각에서는 다르게 보인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녕을 위해 대면 종교활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인으로서 큰 비용을 치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쪽을 더 신뢰하게 될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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