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위도우', 나타샤는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어 [윤지혜의 슬로우톡]

윤지혜 칼럼 2021. 7. 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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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나타샤는 어떻게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었나. 그녀에게 자신을 어벤져로 만든 이 세계가, 어벤져스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을 절벽 아래 심연의 곳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던질 수 있었을까. 영화 ‘블랙 위도우(Black Widow)’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남긴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되고 또 마친다.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의 유년 시절에서 출발한다. 첫 등장은 여동생과 다소 짓궂은 몸장난을 치며 노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한 평범한 10대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묘한 긴장감을 얼굴에 실은 채 귀가한 아버지 알렉세이(데이빗 하버)에 의해 장면은 급격하게 전환된다.

알고보니 이들은 러시아가 심어둔 위장 가족으로 그 정체가 발각되어 도망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진짜 가족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동생 옐레나 발로바(플로렌스 퓨)와 달리, 나타샤는 이 모든 정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도 가누지 못할 어린 시절부터 선별되어 드레이코프 장군(레이 윈스턴)의 레드룸에서 러시아의 살인병기로 길러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랙 위도우’의 시간은 어벤져스가 분열을 일으킨, 그러니까 ‘어벤져스: 시빌 워’ 직후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히어로들의 연합은 각자가 보유한 강력한 힘과 저릿한 사연만큼 쉽지 않아서, 결국 몇몇은 범죄자로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거나 자취를 감추고 다른 몇몇은 본래의 제 세계로 돌아간 상태다.

나타샤 또한 세계에서 모습을 숨겼는데 ‘블랙 위도우’는 얄궂게도 다시 혼자가 된 그녀에게,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묻는다. 나타샤에게 어벤져스는 어떤 의미냐는 것. 당연히 묻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짧디 짧은 유년 시절을 채워주었던 가짜 가족과 재회하는 자리까지 제공하며 대답을 이끌어내는 집요함을 선보인다.

“It was real, It was real to me”
나타샤는 레드룸에서 빠져 나온 옐레나에게서, 자신이 오래전 제거했다 여긴 드레이코프가 건재해 있으며 그의 악행 또한 한층 잔혹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시 한번 드레이코프와 레드룸을 파괴할 결심을 한다. 그러기 위해선 레드룸의 위치를 알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타샤는 동생 옐레나와 함께 알렉세이와 멜리나(레이첼 와이즈), 그들의 가짜 부모를 찾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 자리에 모인 이 위장가족은 그 어떤 가족보다 더 진짜처럼 군다. 상대가 듣던말던 각자 제 할말만 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마음 깊은 곳의 애정은 잘 표현하지 못한다. 심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대상이어서 보일 수 있고, 또 보일 수 없는 모습이다.

말로는 그저 명령에 따라 부모 역할을 했을 뿐이라면서 여전히 가족 사진첩을 지니고 있고 어린 옐레나가 좋아했던 노래를 기억하는 멜리나와 알렉세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자신에게 ‘가족’으로서 유일한 기억을 남겨준 그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세 사람을 가짜로 여기지 못하는 옐레나와 가짜 엄마가 남긴 ‘Pain only make us stronger(고통이 바로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레드룸의 지독한 세뇌 속에서도 본연의 가치를 지켜낸 나타샤.

처음부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서로를 대하는 마음에 어린 깊고 진한 애정으로, 이것이 이들을 진짜보다 더 깊고 진한 ‘진짜 가족’으로 엮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타샤는 어벤져스를 떠올린다. 이들이 어떤 동기와 목적에 의해,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묶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어벤져로서 함께 여러 역경을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 가족에 버금가는 짙은 동료애 혹은 우애를 갖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어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그러한 묶음들을 떠올리는 나타샤의 얼굴에 온기 가득한 미소가 떠오를 수밖에.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존재하는 가치이며 지속되어야 할 이유이자 목적으로, 그 묶음들을 지켜내는 게 어벤져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그만큼 사랑스러운 사명이 또 없다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던져볼 만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블랙 위도우’는 이렇게 나타샤가 ‘어벤져스’를 ‘가족’이라 칭하고 그의 의미를 깨닫는 데까지 이르게 만들고 만다. 이것의 전과정을 목격한 우리는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왜, 어떻게 그녀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었는지, 꼭 희생되어야만 했는지. 나타샤의 죽음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이들에게 마블이 구하는 완벽한 동의라 하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영화 '블랙 위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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