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나라 病은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대통령 눈높이’

강천석 논설고문 2021. 7. 2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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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모르고 침묵·은폐·정보 加工·거짓말로 국민과 가짜 疏通
국민을 친자식·의붓자식으로 가르면 ‘大통령’ 아닌 ‘半통령’

문무대왕함은 고국에서 직선거리로는 1만2000km, 항로(航路)로 치면 2만4000km 이상 떨어진 아프리카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한국으로 귀환하려면 대략 50일가량 걸리는 위치다. 이 상황에서 선내(船內)에 코로나가 발생, 장병 301명 중 27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 20일 공군 공중급유수송기(KC-330)로 귀환한 병사들은 첫 환자가 발생한 7월 2일부터 겪은 일을 이렇게 토해냈다.

“열이 40도 가까운 환자가 하루 10명씩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피 가래를 쏟으며 살려달라고 했다. 목이 아파 음식 삼키기도 어려웠다. 타이레놀만 먹고 또 먹었다. 내가 빠지면 다른 병사 일이 배로 늘어나니 아파도 동료가 미안해서 버텼다. 첫 환자인 조리병은 계속 기침을 하면서도 감염된 다른 조리병들과 함께 밥을 지었다.”

국내 백신 접종 뉴스를 들으며 ‘나라가 우리를 버렸구나. 서러워서 직업군인 못 하겠다는 생각에 괴로웠다’는 이들에게 수송기 탑승 전날 마지막 임무가 떨어졌다. 알코올 묻힌 걸레나 물티슈로 배와 설비를 닦고 10m 간격으로 ‘방역 완료’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이다. 밤을 꼬박 새웠다. 승조원의 88%가 확진자다. 확진자 손으로 방역을 한 것이다. 귀국하자 장병들에게 새 명령이 내려왔다. 코로나 발병 후 선내(船內)에서 일어난 일을 발설(發說)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군은 사태 원인이 백신 공급 회사와 계약에 따라 백신을 국외(國外)로 반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짓이었다. 백신을 장거리·장시간 저온(低溫) 수송하기 어려웠다는 이유 또한 거짓이었다. 애초부터 군 백신 접종 계획에 ‘청해부대 문무대왕함 장병 접종’이란 단어가 들어있지 않았다. ‘나라가 우리를 버렸구나’라는 병사들의 예감(豫感)처럼 그들은 ‘잊힌 병사들’이었다.

대통령은 군의 대처가 ‘국민 눈높이에 부족했다’며 남 탓을 하고 자신의 책임을 시인하지도 장병과 그 부모·국민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침묵은 상황에 따라 담긴 뜻이 다르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입을 뗄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도 되고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말도 된다. 대통령의 침묵에 부끄러움의 흔적은 없었다.

정부가 국민을 속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실패를 덮어 감추는 은폐(隱蔽)’ ‘유리한 사실과 통계는 과장해서 앞에 배치하고 불리한 것은 뒤로 돌리거나 아예 빼버리는 정보 가공(加工)’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거나 사실인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거짓말’이다.

이 정부는 상황에 따라 ‘침묵’과 ‘세 가지 국민 기만(欺瞞) 방식’을 섞어 국민을 대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댓글 부대를 동원한 여론 조작으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자 대통령은 ‘침묵’했다. ‘입장이 없다’고도 했다. 불법을 동원한 선거로 대통령의 정당성은 한 모서리가 무너졌다. 범법자를 공천하고 범법자가 3년 넘게 공직을 차지하도록 한 죄(罪)는 무겁다. 입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입장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대놓고 부동산 투기(投機)를 일삼아 온 인물을 반부패 비서관으로 발탁하듯이 부적격 인물을 요직에 앉힐 때는 ‘은폐’ 방식을 썼다.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는 경제 브리핑에는 ‘정보 가공’ 방식을 주로 동원했다. 대한민국과 국군의 뿌리가 친일(親日) 세력이라고 은근히 암시(暗示)할 때는 왜곡·정보 가공·거짓말을 함께 섞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눈높이’에 맞춰 돌아가고 있다. 휴전선을 지키는 군 지휘부는 ‘경계’와 ‘감시’ 대신 ‘대화를 통해 안보를 강화한다’고 한다. 대통령 눈높이가 그 정도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면 ‘대통령’이고 내 편만 챙기면 ‘반(半)통령’이다. 대통령은 세금부터 군중 시위 대처 방법까지 국민을 친자식과 의붓자식으로 확실하게 갈라 대해왔다. 의붓자식 취급을 당해온 국민 눈에 온전한 대통령으로 비쳤겠는가.

바다 위 코로나 병동(病棟)에 갇혀 있던 병사들이 귀국한 며칠 후 대통령의 ‘국민 소통 수석’은 이렇게 말했다. “청해부대 관련 보고를 받자마자 대통령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군 수송기를 이용한 장병 귀환 방식을 지시했습니다.” 대통령 눈높이에 맞춰 돌아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보다 정확한 증언은 없다. 나라의 병(病)은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대통령 눈높이다. 내년 3월 9일을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이런 세월이 다시 5년 연장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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