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책임은 아래에, 공은 리더가… 이것이 K리더십

최규민 에버그린콘텐츠부 차장 2021. 7.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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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리더십 교과서는 가르치는데
한국서 유행하는 K리더십은 불리하면 침묵, 유리하면 과장

미군 네이비실 소속 조코 윌링크 소령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브루저 기동대장으로 발령받아 안바르주 라마디 지역에 파병됐다. 파병 후 첫 전투에서 그는 미 육군과 공군, 이라크 정부군 등 300여 명이 투입된 대규모 합동 반군 소탕 작전에 참여해 자신의 부대를 지휘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 혼란스러운 시가전이 펼쳐지던 중, 하마터면 그의 분대 하나가 아군 간 교전으로 몰살당할 뻔한 상황이 벌어졌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네이비실이 발칵 뒤집혔고, 함장이 직접 진상 파악을 위해 라마디로 날아왔다.

브리핑을 위해 작전을 복기하면서, 그는 현장에 있던 분대장과 대원들이 의사소통과 보고 과정 등에서 무수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함장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제가 지휘관이므로 저는 모든 작전과, 전투 중 벌어지는 모든 사건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 드립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전역 후 뛰어난 리더십 컨설턴트가 됐다. 책과 강연, 팟캐스트 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그의 가르침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리더란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윌링크뿐 아니라 많은 책과 동서고금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통해 정립된 ‘좋은 리더십’ 원칙에는 공통점이 있다. 책임은 리더가 지고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려라,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라, 겸손하고 정직하라, 구성원들을 공정하게 대하라, 결단력 있게 행동하라, 실수와 실패에서 배워라.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리더십은 이런 보편적인 원칙에서 벗어난, 뭔가 새롭고 독특한 것이다. 비상식적이지만 성공적이며, 해외에서도 주목한다는 점에서 ‘K리더십’이라고 부를 만하다. K리더십에서는 책임은 아랫사람이 지고 공은 리더가 갖는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불리한 일에는 입을 닫고, 유리한 일은 과장한다. 편 가르기를 통해 갈등을 조장해 나의 입지를 강화한다. 이런 K리더십의 원칙을 이해하면 청해부대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에서 왜 대통령이 사과 대신 훈계를 하는지, 어째서 김경수 지사 판결에 침묵하는지 알 수 있다. 모더나 계약 발표는 대통령이 하고, 백신 예약 대란 사과는 질병청장이 하는 것도 K리더십하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임지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K리더십은 콘크리트 같은 지지율로 성과가 입증됐다. 그래서 다른 정치인과 관료들 사이에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취임 전 겸손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전세 대란 와중에 “주택 임대차보호 3법 시행으로 임차인 다수가 제도 시행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할 만큼 뻔뻔해졌다. 2년간 K리더십을 지켜보며 갈고닦은 결과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을 죄다 좌천시킨 뒤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라고 자부한다”고 한 박범계 법무장관 역시 K리더십의 모범 사례로 꼽힐 만하다.

K리더십은 ‘내로남불’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에서도 명성을 얻는 중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는 지난 5월 ‘naeronambul’이라는 표제어가 새로 등재됐고, 로이터통신은 ‘내로남불: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 문 대통령에게 위선이라는 조롱이 뒤따른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윌링크 소령은 어렵게 쌓아올린 명성과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잃을 각오로 모든 책임을 떠안은 이유에 대해 “그것이 옳은 길이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책에 썼다. 그가 K리더십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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