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좋은 부모, 좋은 자식

- 2021. 7. 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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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스승의 날 즈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앞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께 효도를 다한 뒤에 꼭 출가하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빠르게 지나는 법이니 효도를 마친 뒤라면 늦는다며 아들을 독려했다.

어머니는 등 떠밀어서라도 집을 떠나 공부하도록 했고, 자식은 어머니를 두고는 못 떠나겠다며 끝까지 버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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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스승의 날 즈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 앞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저는 좋은 아버지도, 좋은 선생도 못 되는 것 같아요.” 아마 그때가 아버지로서도, 선생으로서도 힘에 부치던 고비였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병석에 계신 노모 앞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좋은 자식이 못 되는 터였다. 결국 아버지로서도, 선생으로서도, 아들로서도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참담한 고백이 되고 만 셈이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에 나오는 진정사(眞定師) 모자의 이야기는 내가 넘지 못한 고비를 잘 넘긴 사례이다. 진정사는 출가하기 전 매우 가난했으며 군인으로 있으면서 틈틈이 부역을 하여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살림이라고는 다리 부러진 솥 하나가 전부였을 뿐이었는데, 하루는 어떤 스님이 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절을 지을 쇠붙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두말없이 솥을 시주했고, 귀가한 아들은 좋은 일이라며 어머니를 지지했다. 그런데 그때 의상법사가 태백산에 와서 설법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리로 가서 불도를 닦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께 효도를 다한 뒤에 꼭 출가하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는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빠르게 지나는 법이니 효도를 마친 뒤라면 늦는다며 아들을 독려했다. 아들이 차마 따르지 못하자 그렇게 지체하는 것이 도리어 자신을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그 자리에서 있는 쌀을 탈탈 털어 밥을 지어 일부는 먹이고, 나머지는 싸들고 빨리 떠나라고 다그쳤다. 아들은 그렇게 의상에게 가서 ‘진정’이라는 법명을 받아 공부했는데, 3년 만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진정은 가부좌를 틀고 선정(禪定)에 든 지 7일 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국유사’를 펴낸 일연스님은 이 이야기의 제목을 ‘진정사의 효도와 선이 쌍으로 아름답다(眞定師孝善雙美)’라고 잡아두었다. 효도하느라 제 일을 다 못한 것도 아니고, 제 일을 하느라 효도를 못한 것도 아니다. 그 뒷이야기를 보면,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이미 하늘나라에 환생하였다”고 일러주었다. 자식의 공부가 완성되면서 어머니도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어머니는 등 떠밀어서라도 집을 떠나 공부하도록 했고, 자식은 어머니를 두고는 못 떠나겠다며 끝까지 버티지 않았다. 어떤 관계에서든 제 갈 길을 제대로 찾게 해주는 것이, 양자 모두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첩경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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