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 따라 다른 꽃 색깔, '리트머스' 같은 산수국의 비밀
[서울&] [서울 쏙 과학] 빗물보다 약한 산성에 분홍색이던 꽃
토양이 더 강한 산성 되면 푸른색 변해
pH 5.5가 색깔 바뀌게 하는 기준점
색깔 변화의 주역은 땅속 알루미늄
산성 토양에 쉽게 녹아 꽃에 흡수돼
꽃 속 안토시아닌과 반응 ‘푸른색 변신’
“만일 길 가다가 흰 꽃 산수국 봤다면
그것은 산수국 닮은 백당나무 꽃일 것”
분명히 푸른빛이 강하게 도는 청보라색이었다. 그러나 한 달 뒤 산책길에 다시 본 산수국엔 연분홍 꽃들이 달려 있었다. 드문드문 연둣빛으로 바뀐 꽃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홉 살 난 아이가 말했다.
“산수국은 산이냐 알칼리(염기)냐에 따라 색이 달라져. 몰랐어?”
몰랐다. 그래서 가르침을 청했다. 남산의 생태학자 김지석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장에게. 그는 자료 하나를 알려줬다. ‘남산 생태 보물창고 제15호.’ 이 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산수국은 주로 푸른색이지만 분홍색도 종종 보입니다. 토양의 산도(pH)와 알루미늄 등의 영향을 받아 pH가 5.5 미만이면 푸른색, 5.5 이상이면 분홍색 꽃이 핍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먼저 많이 들어는 봤으나 뜻이 기연가미연가한 용어부터 살펴봤다. pH(power of hydrogen). 여기서 쓰인 '파워'는 수학용어로, 말 그대로 번역하면 수소의 멱 혹은 거듭제곱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산성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해서 ‘산도’(酸度) 혹은 ‘피에이치’라고 부른다. 화학 좀 배운 사람들은 독일식으로 ‘페하’라고 한다. 최초 발견자가 덴마크 즉 유럽 사람이라 그렇단다.
pH가 산도를 뜻하니 숫자가 클수록 강산성일 것 같지만 그 반대다. 숫자가 작을수록 산성이 강하다. 음식물을 죄다 녹여버리는 위액은 산도가 pH1~3이다. 먹으면 저절로 눈이 감길 정도로 신 레몬즙은 pH2~3 정도다. 빗물은 pH5.6 정도의 약산성을 띤다. pH7이면 중성이다. 순수한 물이나 우리 몸의 혈액이 그렇다. pH7 이상이면 염기성이다. 비눗물의 pH는 10 안팎이다. 대표적 강염기인 수산화나트륨은 최고치인 pH14에 육박한다.
이때 pH는 수용액의 수소이온 농도를 측정해 계산한다. 수용액 속에 수소이온이 많으면 산성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온’이 뭔지 약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꽃색의 신비를 풀 수 있다. 이온은 원자가 전자를 잃거나 더 가지고 있는 상태다. 전자를 잃으면 양이온, 얻으면 음이온이 된다. 원자핵은 양전기(+)를, 전자는 음전기(-)를 지니기 때문이다. 양이온은 전자를 갖고 싶어 하고, 음이온은 전자를 주고 싶어 한다.
양이온인 수소이온(H+)이 음이온인 수산화이온(OH-)을 만나면 쉽게 결합해 물(H₂O)이 되어버린다. 그 때문에 수용액 속 수소이온을 측정하면 대개 값이 매우 작다. 일상적으로 쓰기에 불편하다. 그래서 pH는 수소이온 농도의 역수에 상용로그를 취해서 구한다. 복잡하지만 구경 삼아 한번 보자면 이런 식이다.
pH = log10(1/[H+]) = -log10[H+]
pH를 이해했으니, 산수국 꽃색 이야기로 돌아가자. ‘토양의 산도(pH)와 알루미늄 등의 영향을 받아 pH가 5.5 미만이면 푸른색, 5.5 이상이면 분홍색’이라는 말은 쉽게 풀어쓰면 이렇게 될 것이다. ‘산수국은 빗물보다 산성인 토양에선 푸른 꽃을, 그 외의 토양에선 분홍 꽃을 피운다’라고.
이렇게 땅의 산도에 따라 다른 빛깔 꽃을 피우기에 산수국은 ‘살아 있는 리트머스 종이’라고 불린다. 혼동하면 안 된다. 실험실에서 쓰는 리트머스 종이의 반응색은 산수국꽃과는 다르다. 거꾸로 산성엔 붉은색, 염기성엔 푸른색으로 반응한다.
리트머스 종이와 산수국 꽃의 반응색이 다른 이유는 토양 속 ‘알루미늄’에 있다. 지구에서 알루미늄은 아주 흔한 원소다. 산소, 규소 다음으로 많다. 여기서 한 번 더 ‘이온’이 등장한다. 알루미늄은 묽은 산에도 쉽게 이온이 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산성 토양에는 대체로 알루미늄 이온이 풍부하다. 이것을 산수국이 흡수해 꽃에 있는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가 반응하면 푸른색으로 바뀐다. 그래서 산수국이 산성 토양에서 푸른 꽃을 피우는 것이다.
만약 알루미늄의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꽃에서 안토시아닌 색소만 추출해서 실험한다면, 강한 염기성에 푸른색으로 반응할 것이다. 리트머스 종이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강한 염기성을 띤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산수국은 없다. 강산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공원에 핀 산수국의 꽃이 푸르다면 그 땅은 약한 산성을 띤다고 봐도 된다. 꽃이 붉다면 그 땅은 약한 염기성 혹은 알루미늄이 적은 토양일 것이다. 산수국 꽃의 안토시아닌은 알루미늄 이온의 영향이 없으면 붉은빛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흰 꽃을 피우는 산수국은 없을까? 그건 다른 나무다. 김 과장은 “만약 산이나 공원에서 산수국과 비슷하게 생긴 흰 꽃을 봤다면 그것은 백당나무나 불두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꽃집에서 보는 흰수국은 산수국을 개량한 원예종 중 하나다. 산수국에서 헛꽃, 그러니까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꽃 모양으로 변한 꽃받침 잎만 남긴 무성화다. 유성화가 없어 씨앗이 맺히지 않는다. 이 꽃도 피어난 뒤 시간이 흐르면 품종에 따라 여러 색으로 바뀐다.
심지어 우리 동네 김동현플라워엔 오묘하게 여러 색이 섞인 수국이 있다. 가운데는 분홍인데 가장자리로 갈수록 연둣빛이다. ‘비법’을 물었다. 김동현 사장은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분홍 수국은 시간이 지나면 연두색이 된다”며 “가을엔 갈색으로 바뀐다”고 했다. 산과 염기 그리고 이온 말고 꽃 색깔에 관여하는 것이 더 있나 보다. 꽃들의 신비로운 진화에 경의를 표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자료 : <법칙, 원리, 공식을 쉽게 정리한 물리·화학 사전>(와쿠이 사다미 지음), <교사를 위한 초등 과학 개념서>(안예린·김동현 지음), <두산백과> 자문: 김지석 서울특별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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