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주적으로 삼자는 정치

한겨레 2021. 7. 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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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중국의 조용한 침공>의 저자인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눈치나 보는 한국 정치인들은 정신 차리라”고 윽박지른다. 그는 “한국인들이 어렵게 쟁취한 자유와 독립이 지금 (한국의) 친중 정치인, 재계 엘리트, 여론 형성자들에 의해 팔려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은 중국의 돈을 받아먹고 계속 머리를 굽신”거리든가, “반대로 중국이 부과하는 경제적 처벌을 감내하면서 자유와 독립을 얻기 위한 값을 치르든지” 선택하라는 주장이다. 야권의 정치인들은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위협하며, 한-미 동맹을 해체시키고,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해밀턴 교수의 주장에 공명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의 잔인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정치인 중 가장 강경한 반중 발언을 했다. 유력 대선주자 윤석열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며 봉합되어 있던 한-중 사드 갈등을 후벼 팠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굽신거린다고 비난한다.

사실을 제대로 말해야 한다. 지금 동아시아 국가 중에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 정부도 중국이 영향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강압정책(Coercive Policy)에 굴복한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의 영향력에 대한 이해> 보고서가 주목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영향력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중국이 다른 나라에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를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전부 반발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국이 고립된다. 딜레마 상황에서 중국은 동아시아 어떤 국가에도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포기하고 동맹에서 탈퇴하라고 요구하거나 압박하지 못하고, 실제로 그런 적이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중국의 자본과 기술과 인프라로 구성되는 소위 ‘중국 모델’에 전면적으로 흡수되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우호적인 여론매체와 엘리트를 동원하여 중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들거나, 친중 인사들을 매수하여 중국에 대한 정책을 바꾸게 만들 수도 없다. 그럴 의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관광, 외국인 교환학생 프로그램, 그리고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에서 중국의 영향력 행사가 위협적이라는 게 랜드 보고서의 진단이다.

홍콩이나 신장 지역에서 중국의 권위주의 행태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대만해협에서의 안정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고통받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문명충돌’이나 ‘전략경쟁’과 같은 담론을 우리가 수입해서 분쟁을 지향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정당의 지도자나 대선주자 정도의 유력인사라면 이 점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진정된 지난 3년, 한국의 보수는 주적의 존재감 공백에 몹시 당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가 있어야 보수정치는 활기를 띠는데 북한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주적의 지위에 중국을 올려놓게 되면 중국은 실제로 적이 되어 나타날 것이고,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도 매우 어려운 상황을 자초하게 된다. 지금 국가 지도급 인사들이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해 제대로 통찰하고 있는지 매우 의문이다.

해밀턴 교수는 호주가 중국의 위협에 농락당했다는 피해의식을 한국에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 국가 한국은 호주처럼 중국에 만만하지도 않을 것이고, 쉽게 농락당할 만큼 허약한 국가가 아니다. 우리가 중국과의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중국에 굴복한 대가가 아니라, 혁신국가 대한민국의 역량에 대한 보상이다. 지금 한국 내에 중국의 속국이 되자는 정부는 없다. 지금은 국제관계에서 불필요한 피해의식과 공포를 걷어내고 팬데믹 이후까지 고려하는 자세,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지향하는 데 우리 외교의 중심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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