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광고업자의 진정성

한겨레 2021. 7. 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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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구호단체의 광고에 참여했다.

모든 광고는 가장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노출한다.

이런 영상물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응당 고통에 신음하는 약자의 모습이다.

'참되다' 역시 '진실하다'의 의미이니 결국 진정성이란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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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홍인혜 | 시인

최근 한 구호단체의 광고에 참여했다. 전쟁이나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집하는 영상광고였다. 이런 광고를 만들 때 빈번히 오르내리는 말은 ‘진정성’이다. 카피에서 거창한 수사는 빠지기 마련이고 비주얼 측면에서 화려한 기법은 걷어내진다. 과장이나 눈속임의 낌새가 느껴지는 순간 진정성이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드는 사람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광고는 그야말로 편집과 연출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들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는 적당히 편집된 인생을 선보인다. 우리는 새로 산 찻잔을 자랑하기 위해 최소한 식탁이라도 치우고 사진을 찍는다. 그 30㎝ 옆에 쌓인 설거짓감이나 초파리가 창궐한 음식물 쓰레기는 편집된다.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이윤과 맞닿아 있는 기업은 더하다. 모든 광고는 가장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노출한다. 십수년 이 일을 해온 나로서는 ‘광고는 다 거짓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고―실제로 심의 등의 제도가 있기에 거짓말은 할 수 없다― ‘광고는 영리하게 편집된 진실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지하철역 세곳과 모두 어중간하게 떨어진 아파트를 소개할 때 ‘트리플 역세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광고다. 꽤 걸어가야 닿는 역 세개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역 한개가 나은 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말이다.

그나마 보여야 하는 모습이 멋지고 잘난 모습이면 안면몰수하고 그 최대치를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되지, 구호 광고의 딜레마는 그 반대에 있다. 이런 영상물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응당 고통에 신음하는 약자의 모습이다. 앞서 비슷한 일을 해본 사람들에게 조언을 청하니 어른보다는 아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특히 배고픈 아이가 무력한 엄마와 함께 나올 때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신속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본인도 이 불행 전시에 염증을 느껴 한때는 희망찬 모습을 조명한 적도 있었는데 후원 문의가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이 현실적 조언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타인의 괴로움을 그러모아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지 스스로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고통의 어떤 얼굴을 비출 때가 가장 진정성이 있을지 마케팅적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문득 예전에 우연히 들은 라디오 사연이 떠올랐다.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이었는데 ‘오늘도 새벽같이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온몸이 아프다 하시면서도 병원 한번 안 가시는 어머니, 오늘도 신음하시는 아으 어머니…’ 하는 유의 절절한 글이었다. 별생각 없이 듣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사연을 다 읽은 디제이의 묵직한 한마디였다. “사연자분, 이런 편지 쓰실 시간에 어머니 병원 모시고 가세요.” 디제이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글감으로 도구화하는 것이 얼마나 별로인지. 행동하지 않는 자의 과장된 수사에서 얼마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지.

진정성의 사전적 의미는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다. ‘참되다’ 역시 ‘진실하다’의 의미이니 결국 진정성이란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그럴듯하게 연출해야 하는 이번 업이 저 라디오 사연처럼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괴로워하던 나는 스스로와 이런 부분을 타협했다. 내가 이 일을 잘해내지 못하면 결국 구호의 손길의 줄어들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일을 잘하고 싶다고. 타자의 삶에서 가련함을 발굴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괴롭지만 적어도 그를 대상화하고 싶진 않다고. 이 모든 마음만은 스스로에게 진실하다고. 내 비록 광고업자지만 이 정도의 ‘진정성’이라도 찾지 못하면 도저히 낯이 부끄러워 일을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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