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92] 비둘기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1. 7. 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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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9월 1일, 신시내티동물원에서 ‘마르타(Martha)’라는 이름의 비둘기가 죽었다. 공식적으로 미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나그네 비둘기’(passenger pigeon)였다. 1800년대 미국에서는 수억 마리의 비둘기가 통신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후 기차가 우편 수송을 대신하고, 텔레그램이 발명되면서 이 수요가 없어졌다. 현재는 취미나 경주용, 또는 통신 시설이 빈약한 일부 후진국에서 재난 사태 등을 대비해 기르고 있는 정도다.

영어가 서툴던 초기 유학 시절, 미국인 여학생에게 ‘도브(dove)’와 ‘피전(pigeon)’의 차이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둘 다 비둘기인데 왜 다르게 부르는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보이던 그 학생은 나에게 “‘도브'는 올림픽 개막식 때 날아가는 새고, ‘피전’은 뉴욕의 길바닥에서 보이는 새”라고 설명해 주었다. (300여 종의 비둘기 중에서 ‘도브’는 흰색의, 약간 크기가 작은 종이다.)

같은 비둘기지만 도심에 걸어 다니는 녀석들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다<<b>사진>. ‘유해 동물’로 규정되어 있는 도시 비둘기는 어느 새보다도 비위생적이고, 쥐보다 많은 진드기와 병균을 지니고 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도시의 건축물을 부식시킨다는 사실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한데 뉴욕 주(州)에만도 백만 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비둘기의 배설물 때문에 십여 년 전부터 토양의 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 동부의 흰 오크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붉은 오크나무로 대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을이면 노란색이 주를 이루던 단풍 색도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다.

도심의 '유해 동물'이 된 비둘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실질적인 영향은 더 크다. 북미의 주요 수출 자재인 오크나무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아메리칸 오크통을 이용하여 숙성시키는 스코틀랜드 위스키나 스페인, 남미의 와인 맛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생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애주가들이 벌써 이 섬세한 맛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의 환경 문제가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즈음, 비둘기에 대한 대책도 필요해지고 있다. 내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 ‘도브’가 날아갈 예정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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