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다시 軍을 생각한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2021. 7. 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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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대왕함을 타고 아덴만 인근에서 8월까지 해상 작전 중이어야 했을 청해부대 34진이 급거 귀국했다. 그것도 자신들의 모함인 문무대왕함에서 전원 하선해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KC-330) 두 대에 분승해서 말이다. 지난 2월 8일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를 출항한 이후 6개월 가까이 코로나 백신 사각지대에 방치해놨다가 승조원 등의 80%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되자 부랴부랴 철수 작전을 펼친 것이다. 군 당국은 이 철수 작전에 ‘오아시스’라는 작전명을 부여하고 이를 낯 두껍게 홍보하기까지 했다. ‘오아시스’라는 작전명은 ‘위안·생명’ 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안전하게 복귀시키겠다는 의지와 빠른 치유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한마디로 난센스다.

해외파병 중 코로나19가 집단발병한 청해부대 제34진 장병들이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를 타고 20일 오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 기내에서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 문제의 발단은 해외에 파병된 국군 최정예 청해부대 34진을 6개월 동안 백신 사각지대에 방치해 놓은 청와대와 국방부의 몰상식이었다. 이것을 덮으려고 뒤늦게 펼친 ‘오아시스’란 철수 작전 역시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이른바 오아시스 작전은 청해부대의 면면이 이어져온 명예와 전통에 대한 고려는 무시한 채 오로지 당장의 관리적 차원의 사태 수습에만 혈안이 된 작전이었다. 문무대왕함 함장 이하 승조원은 물론 특수전(UDT·SEAL) 장병으로 편성된 검문 검색대, 해상 작전 헬기(LYNX)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청해부대 34진 300여 명 전원이 임무 미완수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모함에서 전원 하선해 공중 수송되는 굴욕(?)을 감내하며 철수해야 했다는 사실은 덮어놓은 채 정부는 대단한 작전을 한 것처럼 홍보했다. 애당초 백신만 제대로 맞았어도 문무대왕함과 함께 금의환향했어야 했던 이들 아닌가!

# 진짜 문제의 본질은 현 정부에서 대한민국 국군은 살아있는 군이 아니라 그저 허접한 관리 대상이요 어물쩍한 행정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강한 군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 하지만 나라가 허물해져서인지 군도 허물해진 지 오래다. 군은 장비와 덩치로만 강해지는 게 아니다. 군은 사기를 먹고 명예로 산다. 하지만 이번 청해부대 34진 사태를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에서 국군은 무엇이며 지금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서욱 국방장관은 ‘청해부대원들의 안전하고 신속한 복귀가 최우선 임무’라고 떠들기 전에 진짜로 청해부대 34진의 존재 자체를 잊지 않았다면 작금의 오아시스 작전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신을 공수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청해부대 34진 전원 철수를 위해 공군 수송기 두 대를 띄워 10여 국 영공을 통과하려고 영공 통과 국가 및 관계 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다며 뒷북 치듯 자랑하며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으로 백신을 보냈어야 했지 않느냐 말이다. 이미 지난 4월 ‘고준봉함’에서 34명의 코로나 집단 확진이 발생하자 서 장관은 같은 달 28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함정 등 밀폐 공간에서 생활하는 장병을 최우선순위로 백신 접종을 하겠다며 그 인원이 4만6000여 명이라고까지 답변했다. 청해부대는 그 4만6000명에도 끼지 못할 만큼 존재감 없이 사실상 방치했어야 할 대상이었나?

# 청해부대는 2009년 3월 3일 국회에서 ‘국군 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병 동의안’이 가결됨에 따라 창설한 국군 사상 첫 전투함 파병 부대다. 이때 소말리아 파병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해상 수송로의 안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기 위한 것으로 청해부대는 바레인에 있는 연합해군사령부(CMF)와 공조해 해적 차단 및 테러 방지 등의 해양 안보 작전 임무, 그리고 소말리아 아덴만을 통과하는 한국 선박의 해적 피해를 막으려 파병됐던 것이다. 그 이름 ‘청해’는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했던 해상 무역 기지 ‘청해진’에서 따온 것으로 대한민국의 해양 수호 의지를 상징한다. 물론 청해부대는 국군 최초의 전투함 파병 부대라는 상징성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 국적 선박이 연간 400여 척 이상 통과하는 주요 해상 수송로인 아프리카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22차례 이상 해적을 퇴치하며 우리 국군 최초의 공해상 인질 구출 작전인 ‘아덴만 여명 작전’을 위시해 한진텐진호 선원 구출 작전, 제미니호 피랍 선원 구출 작전, 리비아 교민 철수 작전 등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고 구출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아덴만 해역을 통과하지 않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원유, LNG 등을 실은 우리 국적 선박들이 우회할 경우 1만t급 컨테이너선 기준 75억~80억원 정도의 비용이 추가로 드는 것을 감안하면 청해부대는 우리의 실질적인 경제적 국익에도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청해부대를 백신 접종에서 뺀 것이다. 말이 되는가? 오아시스 작전이니 뭐니 하며 호들갑 떨며 전원 수송기로 귀국시킬 정도의 요량이었으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백신을 문무대왕함으로 보내 전원 접종시켰어야 했다.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빼놓고 넋 놓고 있었던 것밖에는 안 된다.

# 서해안에서 공무원이 피살, 화형되는 사건을 두고도 눈만 껌벅거린 군 당국이었다. 장병들 급식이 개판이어도 급량비만 좀 더 올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군 내 성추행에 대해 제대로 기강조차 잡지 못한 군이 이제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라 할 파병 전투함을 공해상에 ‘빈 배’로 놔둔 채 승조원과 파병 인력 전원이 수송기로 귀환하는 희한한 장면을 또 한번 목도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과연 군은 존재하는가? 코로나 방역 차원의 문제로만 이번 사태를 보지 말자. 더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군이 그저 일개 행정 조직화되어 생긴 문제 아닌가. 군이 진짜 싸워야 할 것은 코로나가 아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군의 가장 큰 문제는 왜 군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대한민국이 위태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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