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뺄셈의 정책과 덧셈의 정책

- 2021. 7. 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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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등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정 대상 겨냥한 규제는 저항 초래
인간의 본성 인정·대안 제시 바람직
상생의 정책 펼쳐야 성과낼 수 있어

며칠 전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와 사회자가 나누는 대화에서 무릎을 치는 대목이 나왔다. 출연자가 사회자에게 “만약 당신이 자영업자라고 가정하고 고용한 직원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하니 사회자는 “임금을 삭감해야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출연자는 “저라면 오히려 임금을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이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져 오히려 불안감에 직원이 열심히 일할 테니까요”라고 답했다.

위 대화를 통해 우리는 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데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출연자에 따르면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 문제를 일으킨 집단을 직접 조치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활용한 대안의 제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반면 사회자에 따르면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일으킨 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하므로 규제와 불이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필자는 전자를 덧셈의 정책, 후자를 뺄셈의 정책이라 칭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어느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 쉽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는 대개 덧셈의 정책보다는 뺄셈의 정책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정책 대상을 한정할 수 있어 적은 고민으로도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고 국민들이 도덕적 판단을 하게 만들어 정당성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잡해지고 수평화된 현대사회에서 뺄셈의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뺄셈의 정책의 예는 부동산 정책에서 잘 나타난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값 안정이다. 사실 집값이 결정되는 요인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인구의 이동, 교육·문화 인프라의 집중, 일자리의 존재, 거주방식의 변화, 교통·생활시설 편리성, 투자 욕구 등 복잡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어떻게 보면 집값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정권 초기 집값이 들썩이면서 정부는 다주택자의 탐욕으로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고강도 규제 정책을 내놨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올리고 임대차 3법을 시행했다. 결국 철회되긴 했지만 재건축 2년 실거주 조항까지 더해졌다. 물론 불로소득을 억제하고 경제정의를 실천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집값이 우리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한 채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책을 쏟아내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유동성 공급, 박원순 시장 재임 시 정체됐던 신규 공급, 높은 양도세로 인한 자녀 증여로 인해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부동산 가격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 소유자에 정책이 집중되다 보니 ‘풍선효과’로 이제는 빌라와 오피스텔로 투자가 확대돼 이마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집을 가진 사람은 물론 가지지 않은 사람도 힘들게 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뺄셈의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문제는 그 사회의 역사, 문화, 제도 안에서 개인들이 자신을 위해 내린 결정이 누군가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져 발생한다. 따라서 특정 대상을 겨냥한 정책은 반감과 저항을 초래하며 이들은 오히려 정보와 규제의 빈틈을 활용해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한다. 정부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에 규제를 통한 뺄셈의 정책은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정책 시행 과정에서 정책 대상자에 대한 섣부른 도덕적 판단을 배제해야 한다. 가령 다주택 소유주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투기꾼도 있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사다리로 주택을 활용하려는 사람, 갑자기 상속받은 사람 등 다양한 이유와 상황이 가능하다. 이들을 모두 문제 유발자로 간주해서는 의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또한 인간의 본성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추상적 공익보다는 구체적 사익을 먼저 추구하는 게 당연하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이 오르면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는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사람이 가파르게 증가한 상황은 정책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나타낸다. 어떻게 돼야 한다는 당위의 차원이 아니라 너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냐는 현실의 관점에서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

그리고 덧셈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온전히 새집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된 수도권에서 신축이건 임대건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이 생기기 위해서는 기존 소유주의 이익을 인정하면서 일부를 공익으로 전환하는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양도를 원활하게 하는 길을 열어주고 재건축을 포함한 신규 공급의 조건을 완화해 기존 소유자가 이익을 얻으면서도 집을 원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만이 의도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특정 대상을 규제하는 단순한 뺄셈의 정책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선택을 통해 상생하도록 기획된 덧셈의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가 유능한 정부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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