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칼럼] '비워진 성' 아프간에서의 그레이트 게임

정의길 2021. 7. 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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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로 다시 세력 공백이 조성돼, 중국을 초대하고 있다. 중국에 위기와 기회가 어른거린다. ‘비워진 성’ 아프간은 다시 ‘제국의 무덤’이 될지를 가늠하는 21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을 점화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당시 미국 해병.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의길 선임기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그리스 제국, 무슬림들의 칼리프 제국,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 대영 제국, 붉은 군대의 소련, 그리고 미국에 이어 이제 중국이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의 초대를 받고 있다. 앞서의 제국들이 아프간에서 모두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아프간을 전격적으로 점령했지만, 현지의 거센 저항에 시달리다가 제국의 힘이 쇠잔하는 재앙을 맞았다.

특히 근대 이후 영국과 소련,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것은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할 아프간에서 세력 공백이 생겨서 안보 위기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남진하는 러시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소련은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권 붕괴가 야기할 안보 위기를 막기 위해, 미국은 9·11 테러를 감행한 알카에다를 응징하고 아프간의 테러 기지화를 막기 위해 침공했다가, 모두가 참담한 재앙을 겪고 철수했다.

이제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로 다시 세력 공백이 조성되고 있다. 이번 세력 공백은 중국을 초대하고 있다. 중국에 위기와 기회가 모두 어른거린다.

소련의 침공 이후 아프간은 중국에 완충지대였다. 미국이 기획한, 아프간에서 벌어진 반소련 무자헤딘 항쟁에 중국은 무기를 공급하는 등 적극 가담했다. 이 과정은 중국이 아프간을 통해서 중앙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소련이 철수하고, 엄혹한 탈레반 통치하의 카불에서도 중국 매춘 조직이 먼저 진출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도 중국에게는 아프간 안팎의 이슬람주의 세력 제어 등 안정화 노력은 미국에 맡기고, 자신들은 이를 향유하며 영향력을 확장하는 기회였다. 중국은 아프간에서 메스아이나크 구리 광산, 아무다리야 분지의 유전 개발권 등을 따냈다. 중국의 세력 확장인 일대일로 사업에서 아프간은 필수적인 국가가 됐다.

아프간 안팎에서 편익만 누리던 중국은 이제 비용도 지불하게 됐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5월 “아프간에 주둔군을 두고 있는 외국이 책임 있는 방식으로 철수해 아프간 국민에게 더는 불안과 고난을 주지 않길 호소한다”고 논평한 것은 중국의 불안과 불편을 말해준다. 반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아프간 철군 결정은 중국과 코로나19 같은 도전에 자원을 집중하려는 목표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성을 비워서 적을 유인하는 ‘공성계’이다. 아프간을 비워줘서, 중국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비워진 성이 반드시 공성계의 덫은 아니다. 비워진 성인 아프간의 주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탈레반은 중국을 “환영받는 친구”라고 초대하고 있다. 탈레반 대변인은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신들에 “우리는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신장위구르 지역의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중국의 단속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중국도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프로젝트로 고속도로·철도·파이프라인 등을 연결하는 620억달러(약 71조1500억원) 규모의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을 아프간까지 연결하는 협상을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아프간과 진행 중이다.

비워진 성인 아프간이 중국에는 덫이 아니라 기지로 접수된다면, 유라시아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 중국 주도로 아프간 안팎이 안정화되고, 중앙아시아가 인도양 연안 등 유라시아 초승달 지역으로 연계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국 패권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로 평가한 중국-러시아-이란의 반미 연대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간의 안정을 주변 국가 모두가 반드시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간의 반소련 무자헤딘 투쟁 지원을 주도한 파키스탄의 무함마드 지아 울하크 전 대통령은 “아프간이라는 땅은 항상 적당히 끓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의 분쟁을 통해 인도와 영유권 다툼을 하는 카슈미르 지역의 정세를 유동화시켜서 인도에 안보 부담으로 작용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이번에는 중국과 경쟁하는 인도가 아프간 분쟁을 유동화시켜야 할 이유가 커지고 있다. 아프간 안팎의 불안정은 이제 인도보다는 중국에 더 부담이다. 인도는 아프간 내전 때 반탈레반 세력인 타지크 중심의 북부동맹을 러시아, 이란과 함께 지원했다. 러시아와 이란이 중앙아시아의 안정을 바라기는 하나, 탈레반과 중국의 영향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터키도 미군이 철수하는 카불 국제공항의 운영을 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비워진 성’ 아프간은 또 다른 제국 중국을 초대하며, 다시 ‘제국의 무덤’이 될지를 가늠하는 21세기의 그레이트 게임을 점화하고 있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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