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진보정권 자영업 잔혹사, 文 대통령의 잊혀진 약속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줄호소
文 "자영업자 의견 대변" 약속 지켜야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자영업자들이 이런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2004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 음식점 주인 3만여 명이 모여 “못 살겠다”며 솥단지를 내던지는 퍼포먼스를 한 것이 효시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가 무분별한 신용카드 장려 정책으로 싹을 뿌렸고, 카드대란 발발과 급격한 내수 위축으로 시작된 자영업 불황에 노무현 정부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에 비해 자영업자들의 이번 시위는 정부가 훨씬 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거리 두기의 경우 재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방역정책 혼선과 미흡한 손실 보상은 자영업자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숱한 반대에도 현 정부가 아집과 독선으로 밀어붙인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에 관해서는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 인건비 감당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내보낼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쉽게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2018년 8월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었다”면서 “고용 악화를 최저임금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며 이를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뒤를 못 본 근시안이었다.
그해 12월부터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수는 감소세로 돌아서, 지난달까지 31개월 연속 줄었다. 반면 고용원 없는 1인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자영업자들 중에는 2∼4명이 하던 일을 혼자 감당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대 구직자들 사이에선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3개월간 이력서를 돌렸지만 한 곳도 연락이 안 온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무일푼 처지가 된 것이다.
최저임금은 꼭 있어야 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인상도 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인상은 사람의 몸을 침대에 맞춰 늘이거나 잘라서 죽이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될 위험성이 크다. 노동생산성이 한국보다 높은 일본과 비교해 보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을 2017년 6470원에서 2022년 9160원으로 41.6% 올렸다. 이에 비해 일본은 같은 기간 848엔(8777원)에서 930엔(9626원)으로 평균 9.7% 인상하는 데 그쳤다. 터키와 한국에만 있는 법정(法定) 주휴수당(주당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 대해 하루 치 임금을 추가로 주는 제도)을 감안하면 이미 한국의 실질 최저임금은 일본을 넘어선 상태다. 제도의 유연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일본은 물가나 생산성에 맞춰 지역·산업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예컨대 올해 도쿄의 최저시급은 1013엔이지만 아키타 등 7개 현(縣)은 792엔으로 221엔이나 차이가 난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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