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도입 시급

박현진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학장·식품공학 2021. 7. 19.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우리나라 음식물 폐기량은 연간 약 548만t이다. 이 중 유통기한이 경과해 폐기되거나 반품되는 식품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연간 최대 1조5400억원에 달한다. 소비가 가능한 음식임에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하는 낭비가 상당하다. 이 때문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현진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학장·식품공학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이고, 소비기한은 섭취하더라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말한다. 두 기한은 설정 방법에 차이가 있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제조일자에서 품질의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기간에 안전계수 0.6~0.7을 곱해서 계산하고, 소비기한은 이 안전계수가 0.8~0.9여서 유통기한에 비해 더 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식품위생법에서 식품별로 유통기한을 설정함으로써 식품 안전성을 보호해왔다. 유통기한은 국가 차원에서 식품 안전을 관리하는 데는 용이하지만, 소비 가능한 식품을 폐기하게 만드는 등 부작용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2%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려 했고 81.2%는 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을 섭취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응답자 중 78.4%가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을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판매기한일 뿐이어서 이 기한을 지나 섭취해도 문제가 없음을 알지만, 언제까지 섭취해도 좋을지 모르기에 식품을 폐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도입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우유의 유통기한은 약 10일이지만, 밀봉한 상태로 냉장보관이 잘 된다면 유통기한 경과 후 50일까지도 소비할 수 있다. 식빵은 유통기한이 3일이지만 소비기한은 이보다 20일 더 길다. 소비기한도 유통기한과 마찬가지로 제품에 따라 다르므로, 제품별로 소비기한을 기재해서 실제 섭취 가능한 기한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식품 안전 차원에서 보아도, 요즘은 냉장보관이 용이해서 보관 조건만 잘 준수한다면 유통기한 이후에도 식품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소비기한 표기는 국제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8년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을 식품 기한 지표에서 삭제했다. 주요 선진국들도 이미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하고 있다. 소비기한은 미래세대를 위해 탄소를 저감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시대이기에 소비기한의 도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다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개정안에 따르면 낙농업계의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우유에 대해서는 소비기한 표기 의무를 유예해 2031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와 낙농업계 모두 낙농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모든 식품에 대한 소비기한 도입을 더욱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현진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학장·식품공학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