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새의 선물' 은희경 "시대의 허세, 아이의 목소리로 비판하고 싶었다"

정연욱 2021. 7. 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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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소설가

Q. <새의 선물>의 주인공 '진희'가 12살인 이유?

12살이 어린아이면서 자기 스스로는 조숙하다고 생각할만한 나이 같았어요. 그래서 그 소녀가 '나는 이 세상을 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성장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린아이 같은 말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섞여 있는 나이,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인 경계선, 그런 것이 12살이란 나이로 표현하기가 적당할 것 같았어요. 뒤쳐진 사람, 다친 사람, 다 그냥 그대로 두고 무조건 갔던 그런 경쟁의 시대에 저는 그것이 만들어낸 허세와 권위와 이런 것들에 대해서 특히나 여성, 특히나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비판하고 싶었죠.

Q.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

삶은 웃기는 거다, 이런 게 아니라 너무 정면돌파하듯이 너무 그렇게 고지식하고, 죽어라 하고 사는 사람들, 꼭 이것을 이뤄야 되고 이것 아니면 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여유를 주고 싶었어요.

Q. 제목은 왜 <새의 선물>인가?

(자크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가운데)'어떤 앵무새가 해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가져다줬는데 해는 그것을 거절하고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어린 시절 감옥이라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일 텐데도 그것을 거부하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주인공 소녀를 담아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새의 선물>이라고 붙였어요.

Q. 고향 '고창'을 소설 전면에 부각한 이유는?

상투적으로 고향이 주는 여러 가지 따뜻한 이미지랄지, 근원적인 푸근함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것 말고 제가 성장했던 이 공간 자체에 대한 애정은 당연히 있는 거죠. 그래서 더 생생하게 살려냈던 것 같고.

Q. 소설의 배경 '1969년'은 어떤 시대?

남자들은 다 허세를 부려야 되고, 세 보여야 되니까 뭘 차지하려면. 그리고 비밀도 많고. 왜냐하면, 편법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으니까. 처녀들은 낭만적인 연애를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신분 상승을 위해서 교제를 할 궁리를 하고 있고. 이런 여러 가지 삶의 양상들이 1969년의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 같은 것을 보여주는 거겠죠. 그런 사회가 결국 지금 현재 우리의 이중성, 허위의식, 권위의식, 이런 것의 모태가 됐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서영채/문학평론가

Q. <새의 선물>의 시대정신은?

87년에서 97년, 10년 사이에 한국 사회 전체가 정상화되는 시기였거든요. 삶의 관심이 한국이란 특수성에서 인간이란 보편성으로 가닥이 휘어지기 시작하죠. 그리고 대중문화의 흐름도 크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90년대에 이뤄졌던 것이 제도적 민주화, 그리고 문화적 민주화의 흐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 흐름과 일치하고 있는 거예요, 이 소설이.

Q. 은희경만의 개성은 무엇인가.

늦깎이 작가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어요. '까칠함'입니다. 호락호락하게 세상을 보지 않아요. 세상의 매운맛과 쓴맛을 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낭만보다는 낭만이 환상이나 판타지에 의해 작동한다면 그런 환상의 사라짐, 즉 환멸, 그러니까 환상 너머에 사람들이 추악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법한 그런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감각 자체가 좀 까칠하다.

은희경/소설가

Q. '새의 선물'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이 소설을 일종의 '개인의 선언' 같은 것으로 봐요. 우리가 어떤 사회 속에서 주어진 역할, 이런 것을 감당해내고 어떤 경쟁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누가 정했냐는 거죠. 자기 스스로를 알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가치관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선언? '내가 지금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가더라도, 이 체제에 수긍하더라도, 하지만 나는 따로 있어' 이런 마음? 그런 마음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아를 분리시킨 12살짜리 소녀를 등장시켰습니다.

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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