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한편 방송서 낭송했는데 저작권료가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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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사 제작진은 최근 저작권 대리·중개업체 A사로부터 시(詩) 낭송에 대한 사용료와 중개료를 청구받고 깜짝 놀랐다. 지난 4월 방송에서 한 에세이집 저자가 책에 인용한 B 시인과 C 시인의 시를 한 편씩 읽었는데, 두 시인을 회원으로 둔 A사가 한 편당 200만∼300만 원을 방송사에 요구한 것이다. 방송사는 결국 C 시인의 작품 낭송에 대한 저작권료로 1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사이저작권에이전시·모난돌·한국저작권거래소 등 민간 업체들은 공격적인 영업으로 작가들을 회원으로 확보하며 정부 허가로 운영되는 '신탁관리 업체(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보다 최소 5∼6배에서 최대 10배가량의 금액을 챙겨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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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저작물 저작권 대리· 중개상 횡포에 멍드는 출판생태계
‘신고제’ 민간社 저작물 사용료
‘정부 허가’ 업체보다 최대10배
작가와 논의없이 일방적 협상
‘민간업체 위법소지’지적에도
문체부, 1년 넘도록 조치없어
출판사, 작품 인용 포기 속출
“지적 생산물 창작·유통 위축
결국 작가와 독자에게 피해”
한 방송사 제작진은 최근 저작권 대리·중개업체 A사로부터 시(詩) 낭송에 대한 사용료와 중개료를 청구받고 깜짝 놀랐다. 지난 4월 방송에서 한 에세이집 저자가 책에 인용한 B 시인과 C 시인의 시를 한 편씩 읽었는데, 두 시인을 회원으로 둔 A사가 한 편당 200만∼300만 원을 방송사에 요구한 것이다. A사는 “시인들과 협의했다”고 했으나 방송사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B 시인은 “처음 듣는 얘기다. 터무니없이 높은 사용료는 받을 수 없다”며 수령을 거부했고, C 시인은 “양측이 적정 수준에서 접점을 찾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사는 결국 C 시인의 작품 낭송에 대한 저작권료로 1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프로그램 PD는 “시 한 편 사용료가 이 정도면 어떻게 시를 낭송하느냐”며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중구난방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상황을 개선해 달라”고 촉구했다.
◇‘신고제’ 민간 회사, ‘정부 허가’ 업체보다 최대 10배로 챙겨
3∼4년 전부터 생겨난 저작권 대리·중개업체들이 2차 저작물에 대한 과다한 사용료를 요구하며 출판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이저작권에이전시·모난돌·한국저작권거래소 등 민간 업체들은 공격적인 영업으로 작가들을 회원으로 확보하며 정부 허가로 운영되는 ‘신탁관리 업체(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보다 최소 5∼6배에서 최대 10배가량의 금액을 챙겨가는 실정이다. 이들 민간 회사는 출판사가 시 한 편을 인용한 경우 3년간 최소 75만 원 정도를 요구하는데, 이는 문예지들이 신작 시에 지급하는 원고료(15만 원 안팎)와 비교해도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2차 저작물에 대한 작가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출판계는 “오랜 기간 시장에서 형성된 ‘룰’을 깨는 행위”라며 “저작권료 부담 때문에 출판사들이 작품 인용을 꺼리면 지적 생산물의 유통이 위축돼 결국 작가와 독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민간 대리·중개업체 가운데 가장 활발히 영업 중인 곳은 2017년 설립된 사이다. 4년 만에 개인 회원 282명, 단체 회원 52곳을 확보한 이 회사는 저작물 17만6792건에 대한 대리·중개권을 갖고 있다. 사이는 시의 경우 자사 소속 작가의 작품을 인용한 출판사에 기업 규모별로 한 편당 연간 사용료 10만∼20만 원을 부과한다. 작가에게 지급하는 사용료와 별도로 회사가 가져가는 중개료는 1년에 15만 원.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가 청구하는 금액이 ‘3년에 8만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사이의 사용료·중개료는 최소 75만 원{(10만 원×3년)+(15만 원×3년)}으로 10배가량 차이가 난다. 사이는 산문에 대해선 연간 20만∼30만 원(원고지 10매 초과분은 추가 금액 발생)을 책정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악화한 출판환경을 감안해 중개료를 50%가량 인하했으나 내년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인상해 2023년 하반기엔 원래 수준으로 되돌릴 계획이다. 후발 업체인 모난돌은 장르별로 20만∼100만 원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사용료에 인용 포기…지식 생태계 위축”
출판계는 저작권 보호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민간 업체의 과도한 저작권료 책정이 지식 생태계 질서를 해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흥식 한국출판인회의 사무국장은 “그동안 2차 저작물 권리에 대한 보호가 섬세하게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저자와 출판사가 상생하는 토대를 무너뜨리는 업체들의 무리한 이익 추구는 지적 콘텐츠의 활발한 창작과 유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업체들의 높은 저작권료 요구에 출판계에선 이들 회사 소속 작가의 작품 인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출판사 대표는 “교양서에 수록한 시 사용료가 너무 비싸 다른 작품으로 교체한 데 이어 기획 단계인 시선집도 민간 에이전시 소속 작가는 제외하고 작품을 선별 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시 두 편만 인용해도 150만 원가량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는 단행본 저자가 초판(약 2000부) 판매로 받는 인세(약 300만 원)의 절반”이라며 “교과서나 참고서도 인용의 폭이 제한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법 위반’ 소지 다분한데…정부는 두 차례 간담회로 ‘끝’
저작권법 2조에 따르면 정부 허가로 운영되는 신탁관리 업체와 달리 민간 대리·중개업체는 정부에 신고만 하면 설립할 수 있다. 신탁 업체는 재산권을 모두 저자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반면 민간 회사는 저작권자의 지시를 이행하는 일종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 신탁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인(私人) 간 계약을 법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출판계 생각은 다르다. 치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그동안 못 챙긴 돈을 받아주겠다”며 작가에게 접근하는 민간 업체들이 법적 허용 범위를 넘어 사실상 유사 신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방송사 사례처럼 작가와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협상에 나선 것은 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작권법 전문가인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민간 업체들이 ‘심부름꾼’을 넘어 재산권을 위임받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며 “업체가 자사 소속 시인도 수용하기 힘들 만큼 높은 금액을 부른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출판사 487곳이 회원인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해 4월 문체부에 “저작권법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감독기관의 조치가 시급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1년이 넘도록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을 불러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하고, 사이에 “저작권법 허용 범위 안에서 업무를 진행하라”는 행정 지도를 내린 게 전부다. 문체부 관계자는 “출판계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75만 건인 신탁 업체의 관리 저작물을 2024년까지 200만 건으로 늘려 ‘과다 사용료’ 문제 조정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사이 관계자는 “신탁 업체는 사용료를 10년 전보다 불과 20∼30%만 인상한 반면 민간 회사들은 저작권료를 현실화해 작가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며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미 정부에 해명했다”고 말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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