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몰수당한 재산 되찾을 수 있을까?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이번에 살펴보려고 하는 주제는 통일 이후 몰수재산 처리, 즉 해방 이후 북한에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재산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사유화를 논의할 때 토지, 주택, 기업 사유화와 함께 중점적으로 논의되는 부분이 몰수재산 처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해방 후 북한 정권은 무상몰수 방식으로 토지를 국유화했습니다. 이렇게 원래 개인소유였다가 국가에 의해 몰수된 재산은 원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 그 재산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권리를 존중할 것인지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원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한다면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반환하거나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고 원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원소유자가 재산 소유권과 관련해 법적 분쟁을 제기할 수 있고 점유자도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며, 재산에 대한 법적 분쟁이 계속될 경우 새로운 국토 개발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러시아는 반환 불허, 헝가리는 반환 대신 보상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체제 전환 과정에서 몰수재산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와 동구 사회주의권도 체제 전환 당시 사유화를 어떤 원칙하에 진행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했습니다.
크게 분류하면 러시아는 원소유자에 대한 반환이나 보상을 아예 불허했고, 헝가리는 반환 대신 보상을 하도록 하는 원칙을 채택했으며, 독일을 비롯한 다른 동구권 국가들은 대체로 원소유자에게 재산을 반환하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러시아가 원소유자에게 반환, 또는 보상을 불허한 것에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이미 70년 이상이나 토지에 대한 국가소유권이 확립돼 왔고, 과거에 등기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원소유자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됐습니다. 혁명 당시 토지를 몰수당한 사람들이 대체로 지주들이고, 농민들이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한 전통도 미약하다는 점에서 원소유자 반환이 의미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다른 동구권 국가들은 원소유자에게 몰수재산 반환
러시아와 헝가리를 제외한 다른 동구권 국가들은 대체로 원소유자에게 옛 재산을 반환하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사회주의 성립 이후 비교적 짧은 기간인 40여 년 만에 체제 전환이 이뤄지면서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대부분 그대로 생존해 있고, 이들이 재산 반환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입니다.
독일이 몰수된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반환하는 원칙을 채택한 것은 과거 동독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몰수한 행위를 불법행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동독이 분단 이전의 소유관계를 규정하는 토지대장을 폐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등기제도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 동독의 농업집단화가 소유권을 박탈하지 않은 채 출자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 나치에 의해 몰수됐던 유대인들의 원래 재산을 원주민에게 돌려주도록 하는 미국의 요구 등도 원소유자 반환의 배경이 됐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통일 이후 북한에서의 몰수재산 처리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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