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자가격리의 시간
[경향신문]

하나의 질병이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 일상의 산물인 언어에도 변화가 오고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조어의 출현이다. 온택트, 집관, 차박 등 영어를 가져오거나 우리말을 축약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공식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자가격리’ 역시 코로나19 이전에는 못 보던 어휘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으니 ‘자가 격리’라고 띄어 써야 맞겠지만 대부분의 국가기관과 언론매체에서 띄어쓰기 없이 사용할 정도로 자가격리는 시민권을 얻은 어휘가 되었다. ‘자가(自家)’라는 어휘가 ‘자기의 집’과 ‘자기 자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고 자가격리가 주로 ‘자기의 집’에 머물며 이루어지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도 있지만, 자가격리의 자가는 ‘자기 자체’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이미 사용되어 온 자가 진단, 자가 치료 등에서 가(家)가 집의 의미를 지닌 실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자(自)의 이른바 ‘대표 훈’으로 알려진 ‘스스로’가 ‘자기 자체’와 연결되는 의미인데, 이와 다른 뜻으로 ‘저절로’라는 뜻도 있다. ‘스스로’와 ‘저절로’는 뜻과 쓰임이 다르지만, 의외로 구분이 힘들거나 뜻이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자치(自治)는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뜻으로 사용된 용례도 적지 않다.
사마천은 노자의 사상을 ‘무위자화(無爲自化)’라는 말로 요약했다. 작위적으로 하는 일 없이 저절로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수양하며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긴 유가와는 정반대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가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역시, 의도적인 인위를 넘어서 변화를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잘 다스려지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김시습은 ‘생각 없음’이 도의 본체이지만 그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잠시도 생각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의식하고 지키며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노력 없이 이 긴 터널이 끝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우리가 빠져나온 터널을 되돌아보며 마치 저절로 모든 것이 변화된 것처럼 여길 날이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다시 힘겨워진 격리의 시간을 우리는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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