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타고난 리바운드 수집가, 라이언 페리맨

김영훈 2021. 7. 1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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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올루미데 오예데지. KBL에서 리바운드를 떠올렸을 때 아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리바운드를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냈던 선수가 있다. 대구 동양 출신의 라이언 페리맨이다. 타고난 리바운드 수집 능력으로 KBL에서 이름을 알렸던 페리맨의 이야기를 돌아봤다.

글 = 김영훈 기자, 사진 = KBL 제공

■ 대학 시절과 해외 무대 그리고 한국 입성
프로 선수라면 모두가 타고난 능력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라이언 페리맨은 리바운드에서 타고난 능력을 자랑했다. 그가 리바운드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알려진 것은 대학시절부터.

데이튼 대학교에 진학한 페리맨은 신입생부터 주전으로 뛰며 수준급 리바운드 능력을 자랑했다. 매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인 그는 4학년 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33경기에 출전한 그는 15.2득점 12.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97-98시즌 전미 리바운드 랭킹 1위에 올랐다. 페리맨 밑으로는 마이클 올로워캔디, 앤트완 제이미슨, 라예프 라프렌츠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페리맨을 찾는 NBA 팀이 없었다. 팀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 데이튼 대학은 페리맨 재학 4년 동안 NCAA 토너먼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그저 그런 팀이었다.

꿈의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페리맨은 해외 무대로 눈을 돌렸다. 중국에서 잠시 뛰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활약했다. 어디를 가도 타고난 리바운드 능력을 자랑했던 페리맨은 2001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를 선택한 팀은 대구 동양. 전체 20순위로 막차를 타고 간신히 한국 무대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페리맨이 입단할 당시 동양은 전 시즌 하위권 팀이었다. 그것도 그냥 하위권이 아니었다. 순위는 꼴찌였으며, 시즌 도중 32연패라는 전세계 농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작성했다. 45경기에서 그들이 거둔 승리는 단 3승에 불과했다. 그가 대학 시절 뛰었던 데이튼은 동양에 비하면 약팀 축에도 끼지 못했다.

 

■ 꼴찌에서 우승 신화...역사와 함께 한 페리맨
단순히 한 시즌 동안 암울했던 팀은 재기를 노렸다. 전희철과 김병철이 군에서 돌아왔으며, 3순위로 동국대학교 김승현을 선발했다.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페리맨에 앞서 전체 1순위로 마르커스 힉스를 지명했다.

결과적으로 오리온의 이 선택들은 모두 성공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3순위 가드는 대박을 쳤으며, 힉스는 1순위의 명성을 증명하듯 매 경기 날아다녔다. 전희철과 김병철도 그동안의 공백을 무색하게 할 만큼 뜨거운 득점 감각을 자랑했다.

이들이 화려함을 담당했다면 페리맨은 뒤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책임졌다. 그는 꾸준히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동양의 질주를 뒷받침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투지와 타고난 센스를 앞세워 장신들 숲에서 제공권을 책임졌다.

52경기에 출전한 페리맨은 14.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그중 공격리바운드는 무려 4.7개를 걷어냈다. 리바운드 수치는 리그 1위였으며, 공격 리바운드는 얼 아이크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궂은일에 집중했음에도 페리맨은 득점이 적지 않았다. 경기당 평균 16.7점이나 올렸다. 60%에 육박하는 정확도로 기록한 효율 높은 득점이라 더욱 가치가 있었다.

주전들의 맹활약에 페리맨까지 더해진 동양은 기적을 썼다. 전 시즌 10위 팀은 단숨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4경기를 앞두고 1위를 확정지을 만큼 압도적인 페이스였다.

플레이오프에 나선 동양은 4강에서 창원 LG를 3승 2패로 힘겹게 누르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페리맨은 이 시리즈에서도 평균 17.3득점 13.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자신의 몫 이상을 해냈다. 야투율은 76%에 달했으며, 공격 리바운드는 평균 5개를 잡았다. 엄청난 활약이었다.

대망의 챔프전. 동양은 정규리그 2위 서울 SK를 만나 적잖이 고전했다. 3차전까지 2승 1패로 앞서고 있던 그들은 4,5차전을 내리 패하며 2승 3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6차전과 7차전을 잡은 덕분에 통합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페리맨은 챔프전 6차전에서 12점 13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했으며, 7차전에서는 리바운드 20개를 잡으며 팀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꼴찌 동양의 우승 신화에 페리맨도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 창원 LG에 둥지 튼 페리맨
팀 우승에 기여를 했음에도 페리맨은 동양과 재계약을 맺지 못한다. 챔프전에서 12.1개의 리바운드를 잡은 것에 비해 6.9득점만 올린 공격력이 원인이었다.

소속 팀을 잃은 그는 곧바로 드래프트에 신청한다. 그리고 그는 김태환 감독의 부름을 받으며 창원 LG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LG는 강동희와 김영만을 영입하며 화끈한 공격 농구를 추구할 계획이었다. 국내 선수들의 공격력이 배가 되기 위해서는 골밑에서 축이 될 선수가 필요했고, 그래서 페리맨을 선택했다.

이 계획은 그대로 이어졌다. LG는 조우현과 김영만이라는 쌍포에 강동희의 경기 운영, 외국 선수인 테런스 블랙의 득점력이 합쳐지며 엄청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경기당 13.9개의 리바운드를 잡으며 리바운드상을 거머쥔 페리맨의 활약도 더해지며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그 결과 LG는 정규리그에서 38승 16패를 기록했다. 1위 동양도 38승을 올렸으나, LG는 상대전적에서 밀리며 아쉽게 2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정규리그와 달리 LG는 플레이오프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홈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내주고 출발했다. 3,4차전을 잡으며 역전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5차전에서 무릎을 꿇으며 좌절을 맛봤다.

페리맨은 이 시리즈에서도 11.2리바운드 3.4블록슛을 기록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 나쁘지 않은 기록.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평균 17점을 올린 것에 반해,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10점을 간신히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불과 1년 전 챔프전에서 공격의 한계를 보여줬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 페리맨, 그의 마지막 
다행히 LG는 페리맨의 아쉬운 활약에도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재계약을 맺은 페리맨은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탁월한 리바운드 능력을 뽐냈으며 득점도 두 자릿수 이상 책임졌다. 심지어 2라운드에 당했던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올린 성과였다.

페리맨은 03-04시즌에도 평균 13.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리바운드에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 페리맨은 3년 연속 리바운드 1위라는 대업을 달성했다(다만 이 시즌 막판 밀어주기 경기로 인해 개인상 수상은 하지 않았다).

정규시즌에는 항상 그랬듯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페리맨. 그러나 이번에도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쉬웠다. 6강에서 친정팀 대구 오리온스를 꺾었지만, 4강에서 찰스 민렌드에게 평균 30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페리맨은 이 때도 10점대 초반의 득점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에 비해 부진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페리맨은 KBL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으로 바뀌면서 감독들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 더 이상 페리맨을 찾는 구단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을 떠난 페리맨은 이후 이탈리아 서머리그, 칠레, 도미니카 등을 전전한 뒤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현재 그는 한 출판사에서 영입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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