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코로나 통금
[경향신문]
한국 사회가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로 들어선다. 오는 12일부터 수도권에서 적용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 두기 4단계의 길이다. 4단계는 시민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일상의 한 부분을 견고히 제한한다. 야간의 외출과 만남, ‘밤의 자유’에 대한 구속이다.
한때 이 땅에는 밤에 통행을 금지하는 ‘야간 통금’이 있었다. 조선시대 성문을 닫아 거는 통금에 이어 일제강점기의 야간 통금은 감시와 처벌을 상징했다. 해방이 됐지만 야간 통금은 계속됐다. 미 군정은 1945년 9월에 오후 10시~오전 4시 통행금지령을 포고했다. 통금은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정권을 거치면서도 유지됐다. 사회 공공질서의 유지, 국가안보의 수호란 이름 아래 사상과 자유의 통제, 정치적 저항의 봉쇄 수단이기도 했다. 그 야간 통금은 1982년에 일부가, 1988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정복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 파리에서 널리 읽힌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야간 통행금지’다.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란 마지막 구절로 유명한 시 ‘자유’를 쓴 시인은 “어쩌란 말인가”의 반복을 통해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의 박탈 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할 삶과 사랑도 얘기한다.
수도권에서 거리 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 오후 6시 이후엔 2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직계가족 모임을 포함한 사적 모임은 물론 종교활동도 제한된다. 학교도, 유흥주점도 문을 닫는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심리적인 거리까지 강화한다. 모두를 움츠러들게 하면서 도심의 밤 풍경까지 썰렁하게 바꿀 것이다.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애써 ‘저녁이 있는 삶’으로 위안 삼아야 할지 모른다. 4단계 ‘셧다운’은 우리에겐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길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거쳐온 길이다. 당국이 원망스럽고 일상이 고통스럽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이 함께 가야 할 길이요, 시간이다. 지겨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가야만 할 길이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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