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코로나 통금

도재기 논설위원 2021. 7.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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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위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는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9일 서울 광화문역에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감축운행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김기남 기자

한국 사회가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로 들어선다. 오는 12일부터 수도권에서 적용되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 두기 4단계의 길이다. 4단계는 시민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일상의 한 부분을 견고히 제한한다. 야간의 외출과 만남, ‘밤의 자유’에 대한 구속이다.

한때 이 땅에는 밤에 통행을 금지하는 ‘야간 통금’이 있었다. 조선시대 성문을 닫아 거는 통금에 이어 일제강점기의 야간 통금은 감시와 처벌을 상징했다. 해방이 됐지만 야간 통금은 계속됐다. 미 군정은 1945년 9월에 오후 10시~오전 4시 통행금지령을 포고했다. 통금은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정권을 거치면서도 유지됐다. 사회 공공질서의 유지, 국가안보의 수호란 이름 아래 사상과 자유의 통제, 정치적 저항의 봉쇄 수단이기도 했다. 그 야간 통금은 1982년에 일부가, 1988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정복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 파리에서 널리 읽힌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야간 통행금지’다.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란 마지막 구절로 유명한 시 ‘자유’를 쓴 시인은 “어쩌란 말인가”의 반복을 통해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의 박탈 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할 삶과 사랑도 얘기한다.

수도권에서 거리 두기 4단계가 적용되면 오후 6시 이후엔 2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직계가족 모임을 포함한 사적 모임은 물론 종교활동도 제한된다. 학교도, 유흥주점도 문을 닫는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심리적인 거리까지 강화한다. 모두를 움츠러들게 하면서 도심의 밤 풍경까지 썰렁하게 바꿀 것이다.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애써 ‘저녁이 있는 삶’으로 위안 삼아야 할지 모른다. 4단계 ‘셧다운’은 우리에겐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길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거쳐온 길이다. 당국이 원망스럽고 일상이 고통스럽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이 함께 가야 할 길이요, 시간이다. 지겨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가야만 할 길이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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