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철학경영] 진심을 믿고 볼 일인가

여론독자부 2021. 7. 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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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인간관계 맺기
전 연세대 교수
사람 진심은 믿어주는게 남는 장사
상대방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 땐
결과를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의로 해석해야 올바른 관계 맺어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서울경제]

두 사람이 같이 여행길에 올랐다. 이때 갑자기 길에서 곰이 나타난다. 둘 중 한 명은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서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다. 또 다른 한 명은 이제 꼼짝없이 공격당하게 생겼다. ‘곰은 사체는 안 먹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땅 위에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고 엎드린다. 곰이 다가오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온몸의 냄새를 다 맡는다. 한참 그렇게 죽은 듯이 있었더니 결국 곰은 그 자리를 뜬다. 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내려와서 그 친구에게 물었다. “야, 그 곰이 너한테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던데” 그랬더니 “그 곰이 말이야. 나한테 충고 한마디를 해주더구먼. 너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 도망가는 놈하고는 같이 다니지 말라고”라고 답한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그 뒤로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이솝우화는 딱 여기서 끝나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상황을 살펴보건대 곰이 무슨 말을 했을 리는 없다. 왜? 죽은 사람에게 무슨 말을 걸겠는가. 말하기도 전에 아마 먹어 치웠을 것이다. 죽음을 연기한 사람이 화가 나서 쏘아붙인 말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과거 감정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낫다. 앞으로도 닥칠 위험이 무수히 많을 텐데 그때마다 삐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재빨리 피한 사람도 일단 각자도생하는 것이 둘 모두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의 진심은 믿어주는 것이 남는 장사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가 자꾸 열리니까.

오래전 터키 이스탄불을 친구와 같이 방문했을 때 일이다. 시내 한 호텔에서 짐을 풀고 푹 잤다. 그다음 날 이스탄불대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둘 다 대학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발상이었다. 물어물어 이스탄불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얼마쯤 가고 있는데 두 젊은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아주 친절한 것 같았다. 우리더러 어디를 가냐고 해서 이스탄불대를 구경하러 간다고 했더니 자기네들도 그 대학 학생이라며 따라오란다. 캠퍼스 안내를 자청한다. 그렇게 네 명이 캠퍼스 내에 진입했다. 기왕 온 김에 수업하는 광경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잠깐만 기다리면 잘 아는 교수님한테 허락을 받아 강의실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단다. ‘정말 형제 나라의 젊은 친구들답게 친절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은 우리와 같이 있고 다른 한 명이 어디론가 가더니 한 20분쯤 뒤에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그 교수님이 오늘 수업이 없어 참관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하드웨어만 구경하고 다녔다. 자신들의 시간을 써가면서 먼 나라에서 온 우리를 도와주는 그 두 젊은이가 기특했다. 점심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더니 고맙다고 했다. 학교 앞에 있는 맛집으로 안내했다. 그날 먹은 시시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점심을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자기들이 차를 대접하겠단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굳이 예의가 아니라고 우긴다. 그래서 오케이했다. 이번에도 아주 맛있는 터키 전통 커피집을 소개하겠단다. 공짜 가이드받는 것도 감지덕지한데 커피까지 먹는다니. 그런데 이스탄불의 좁은 골목을 왼쪽, 오른쪽, 또 왼쪽 이런 식으로 한 15분 정도를 걸어가는 게 아닌가. 불현듯 지난주 한국 신문에서 봤던 기사 하나가 내 머리를 스친다. 그래서 우리는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터키에서 한국 여행객 한 명이 현지인들을 따라 커피집에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커피에다 이름 모를 약을 타서 먹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여권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털린 뒤였다. 아마 그날 그 찻집에 갔더라면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의 과도한 친절에 오히려 경계심이 발동된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불투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불명확한 결과가 우리를 겁먹게 만든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할 때는 일단 선의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관계 맺음이다. 단, 그 결과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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