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래 "물리치료사→ '트롯전국체전' 후 확 달라진 일상, 롤모델은 주현미 심수봉" [스타와치]

이하나 2021. 7. 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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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하나 기자]

가수 신미래는 KBS 2TV ‘트롯 전국체전’을 통해 제 2의 가수 인생을 열었다.

생계 문제까지 고민할 정도로 녹록지 않았던 가수 생활 7년을 거친 신미래는 지난 2월 종영한 KBS 2TV ‘트롯 전국체전’에 출연해 첫 등장부터 주목을 받았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8도 올스타를 받았던 신미래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매력적인 음색으로 ‘꽃마차’, ‘꿈 속의 사랑’, ‘오빠는 풍각쟁이’ 등 경연 내내 완성도 높은 무대를 펼쳤으나 아쉽게 결승 문턱에서 탈락했다.

신미래 탈락 후 KBS 시청자권익센터에 올라온 청원이 1천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을 정도로, ‘트롯 전국체전’에서 보여준 신미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신미래는 최근 뉴스엔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트롯 전국체전’ 경연 과정부터 이후 근황까지 이야기를 공개 했다.

▲‘트롯 전국체전’으로 바뀐 일상 준결승전 1차에서 3위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신미래가 이변 없이 결승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라운드 시청자 판정단 점수라는 변수로 인해 10위를 기록해 아쉽게 결승행이 좌절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신미래 역시 “화가 나거나 슬프고 억울한 감정보다는 다음 날까지도 멍한 상태였다. ‘뭐가 문제였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라며 “하지만 어차피 탈락했는데 마음 아파하면 뭐하겠나. 맛있는 것도 시켜 먹고 마음 다스린 후에 부모님과도 통화했다”고 말했다.

‘트롯 전국체전’ 경연 중에서 만요를 사랑한 계기가 된 곡이자, SBS ‘스타킹’, JTBC ‘미라클 코리아’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오빠는 풍각쟁이’ 무대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꼽은 신미래는 가장 힘들었던 무대로는 마지막 무대가 된 ‘고장난 벽시계’를 꼽았다. 당시 노로 바이러스까지 걸린 상황에서 힘겹게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고.

신미래는 “목살 샐러드를 시켜 먹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몸이 너무 아프더라. 병원 가서 링거를 맞고 4~5일을 계속 아팠다. 고장난 상태에서 벽시계를 부르고 탈락하고 다시 고장이 났다(웃음)”라며 “탈락 후에 ‘그러니까 홍콩 아가씨를 선곡했어야지’라는 댓글과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경연인데 더 잘할 수 있는 걸 했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의 목소리라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미래는 “선곡할 때마다 자신있는 노래를 하다 보니 경연 내내 만요 위주의 선곡을 했다. 나는 다른 트로트도 잘 할 수 있는데 대중에게 만요만 하는 사람으로만 보이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멋있게 준비해서 무대를 잘 마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쉽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록 TOP 8에 오르는 데 실패했지만 ‘트롯 전국체전’ 후 신미래의 일상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기존 30여명 정도 되던 팬카페 회원 수는 2천 명이 됐고, 유튜브 구독자 수도 9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신미래는 “요즘은 식당에 갔을 때 어머니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진짜 신기하고 감사했다. 7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물리치료사 병행하며 생계유지, 빛났던 어머니의 선견지명 신미래는 ‘트롯 전국체전’ 출연 당시 가수와 물리치료사를 병행하고 있는 이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중학교 때 처음 가수의 꿈을 꾸었을 때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었던 신미래는 ‘먹고 살만한 것을 만들어 놓으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신미래는 “정말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가수하면서 느꼈다. 데뷔할 때는 3~4년 정도만 지나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고향인 춘천에서는 레스토랑부터 현수막 거는 아르바이트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물리치료사가 기술직이라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에 세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4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며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내가 괜히 가수를 선택해서 겪지 않아도 될 우울함을 느끼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리치료사 일이 생계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무명 설움 버티게 해 준 가족, 팬들의 응원 2014년 ‘사랑이 필요합니다’로 데뷔한 후 7년여의 무명 생활을 겪은 신미래는 가수 생활에 대한 회의, 금전적인 고민 등으로 가수 활동 포기를 고민하던 시점에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심적으로 힘들던 시점에서 시작했지만 신미래는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의 메시지 덕분에 ‘트롯 전국체전’까지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신미래는 “구독자 수가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되고, 지금은 8만 명이 넘었다. 팬들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지 않았다면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그 전에 관뒀을 거다”라며 “팬들이 ‘분명히 잘 될 거다’, ‘포기하지 말자’, ‘조금만 더 버텨라’라고 응원해줬다”라고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신미래는 “처음에 반대를 했지만, 가수가 된 후에는 엄마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일이 없고 내가 우울해 할 때마다 ‘그만해도 돼’라고 위로해주셨다”면서 “아빠는 ‘너는 잘 될 애니까 조금만 더 버텨 봐’라고 해주셨다. 두 분 모두 큰 힘을 주셨다”고 말했다.

▲‘인간 축음기’ 별명 만족, 음색은 가장 큰 무기 ‘음색 마녀’를 비롯한 여러 별명 중, 신미래는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으로 ‘인간 축음기’를 꼽았다. 타고난 목소리에 만요와 북한 노래를 많이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된 현재 음색에 만족한 신미래는 “목소리가 LP판에서 흘러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도 금사향, 백설희 선생님인데 그분들의 음색을 닮은 것 같다고 해주시니까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신미래는 함께 컬래버레이션 해보고 싶은 가수로 조명섭을 꼽았다. 조명섭 역시 가수 현인의 목소리와 비교되며 독특한 색깔로 사랑받고 있다. 신미래는 “조명섭 씨도 현인 선생님 같은 목소리라며 축음기 같다는 평을 받고 있지 않나. 나도 만요를 잘하니까 같이 옛날 노래를 해보고 싶다. 두 사람이 보여줄 독특한 시너지가 있지 않을까”라며 “‘트롯 전국체전’ 멤버 중에는 신승태 오빠와 한 번 해보고 싶다. 오빠가 국악을 전공 하셨는데 두 사람이 마당 놀이나 옛날 뮤지컬처럼 꾸며서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꼽았다.

▲목표는 트로트 공무원, 심수봉 같은 가수 되고 파 중학교 때부터 흔들림 없이 트로트 가수의 꿈을 키워 온 신미래는 가수로서 가장 중심에 둔 가치관으로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를 꼽았다. 어떤 무대가 주어지든 그 순간만큼은 완벽한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바빠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신미래는 자신의 롤모델로 심수봉을 언급했다. 그는 “심수봉 선생님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가수가 노래했을 때 듣는 사람이 공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수봉 선생님의 노래는 절절함이 모두 전달된다. 목소리에 애절함이 있고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멋진 아티스트다”라고 존경심을 표현했다.

이어 “주현미, 이미자, 심수봉 선배님 같은 멋진 선배님들처럼 되고 싶다.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항상 ‘트로트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잔잔하지만 끝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처럼 멋진 길을 걸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뉴스엔 이하나 blis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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