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EYE] 정치 도구화 된 조세정책..'호구' 된 상위 20%
우리 사회에서 정책 실행에 적용하는 소득 분위 혹은 소득 구간 설정은 우리와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선진국들보다 훨씬 복합적인 의미를 띤다. 왜냐하면 훨씬 더 많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소득 분위는 복지나 부의 분배 등에 관한 정책을 추진할 때 기초 자료로 쓰인다. 그런데 이런 소득 구분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진영 구분을 위한 잣대나 혹은 보다 많은 표심을 겨냥한 정치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하위 80%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도 그렇다. 사실 하위 80%의 설정은 매우 어색하고 생소한 구분 개념이다. 하위 10% 혹은 20%처럼 수적으로 적은 범주에 대한 구분이 일반적인데, 하위 80%라는 범위 설정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코로나 재난 상황이 만들어낸 특수한 경우다.
고소득층 세금 부담 OECD 최고 수준 ⇔ 면세 근로자 비율 OECD 최고 수준
상위 20%까지 넓히면 전체 소득세의 90% 이상을 차지할 게 자명한데, 이는 OECD 최고 수준이다. 반면, 국내에서 전체 근로 소득자의 40%가량은 연말정산 환급 분을 감안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소득세 면세자 비율 역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에 대한 극단적 조세정책으로 한국의 상위 소득자 20%는 전체 소득세의 90% 이상을 내면서도 국가가 지원하는 여러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고, 근로자 40%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국가가 제공하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에 따른 불만들은 인터넷 댓글로도 자주 표출된다. 국가가 소수의 상위 소득자를 표적으로 삼아 다수의 중하위 소득자의 박탈감을 덜어주는 정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하소연은 물론,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세금 90% 이상을 부담하는 이들에게서 세금을 더 뜯으라며 아우성치고 있다는 불만도 자주 보인다.
소득세는 누진세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 비율을 높게 만들어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와 조세 형평성을 높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위 소득자는 이미 많은 소득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본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 80%에게 지원금을 주겠다는 정책이 80%의 환영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기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던 여러 조세정책의 투명성과 합리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 때문일 것이다.
경제 회복 중에 빈부 격차 심화 ⇨ 저소득층 집중 지원이 타당
빈부 격차의 심화 중에 나타나는 경제 회복 상황은 국민 모두가 똑같이 힘들다고 상정하기보다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힘들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재난지원금의 실효성을 거두려면 차라리 범위를 대폭 줄여서 하위 30-40%에게 금액을 늘려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차선책으로는, 어중간하게 80% 안팎에게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금액을 조금 줄여서라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함으로써 '호구'된 상위 소득자의 박탈감을 달래주며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게 더 낫다.
상위 소득자에 대한 징벌적 조세와 혜택의 배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反)부자 정서를 활용하려는 정치공학의 그늘진 산물이다. 그것은 논리보다는 감정을 앞세우기에 국가의 통합과 지속가능성에 큰 균열을 가져온다.
혹자는 일부 선진국도 하위 80-90%로 지급하는 곳이 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마다 사정이 다 다른데, 남들이 하기에 그리 하는 게 옳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더욱이 그 나라에는 소득 계층에 따른 편 가르기의 정치적 갈등이 우리만큼 심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형식상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는 절차를 밟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를 배려할 때 완결성을 가진다. 정치가 다수의 기호에 영합하고 그들을 선동하며, 그에 따라 다수의 압도적인 힘이 소수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의 독재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수이지만 세금의 절대량을 부담하는 그런 소수가 배제되는 정책은 조세 정의에도 어긋난다.
고철종(논설위원) 기자sbskc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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