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우리 집이 불법이라고요?"..위반 건축물이 늘어나는 이유

장훈경 기자 2021. 7. 8. 09: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불법'이라는 제보가 왔다. 난데없이 위반 건축물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다. 주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가였다. 베란다와 방을 불법 확장해 이웃의 일조권을 침해했다. 이들은 이런 법 위반 사항을 고백하며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불법을 저지른 건 건축주인데 이를 모르고 산 자신들이 처벌을 전부 떠안게 됐다는 하소연이다.

억울한 호소는 계속 늘고 있다. 위반 건축물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8만 4천여 동이었다가 4년 뒤에 10만 9천여 동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2만 8천여 동이 불법 통보를 받았다. 위반 종류도 다양하다. 근린생활시설 즉, 상가로 허가받아놓고 주택으로 분양한 경우, 허가받지 않고 주택 일부를 불법 증축한 사례, 방 하나를 여럿이 나눠 쓰는 '방 쪼개기' 등 이 모든 게 위반 건축물이다.
 

위반 건축물이 늘어나는 이유


위반 건축물이 계속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건축주 입장에선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위반 사항에 대한 원상복구 명령과 시정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이행강제금은 건축주가 아닌 현 소유주가 부담한다. 일단 위반한 뒤 남에게 팔면 그만이란 뜻이다. 설사 건축주 본인이 소유주라 해도 마찬가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축법에 형사 처벌 규정이 있지만 대개는 수백만 원의 벌금만 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억 단위의 수입을 올리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위반 건축물 지정이 두려울 게 없다.

위반인 줄 모르고 샀다는 사람들은 지자체도 탓한다. 건축 허가, 준공 허가, 사용 승인까지 건축물의 전 과정을 지자체가 관리 감독하는데 위반 건축물을 못 걸러낸다는 비판이다. 지자체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현장 조사 업무 대부분을 민간 건축사에 대행하고 있다. 서류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사용 승인 이후 건축주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만 말한다.

사실 지자체 입장에서 위반 건축물이 늘어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지자체가 걷는 이행강제금은 별도로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17개 시·도가 신규 부과한 이행강제금은 2015년 1천200억 원 정도였다가 4년 뒤에는 1천700억 원까지 늘었다. 현재 국토부는 각 지자체가 이행강제금의 최소 절반 이상을 부담해 위반 건축물을 관리, 감독하는 데 경비로 쓰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안해 발의한 상태이다.
 

'소유자 처벌 강화'? '양성화'?…건축주 처벌 강화해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위반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 횟수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85㎡ 이하 주거용 건축물은 이행강제금을 5번만 내면 됐는데 평생 부과하게 한 것이다. 처벌을 강화해 위반 건축물을 근절하자는 취지였는데 민원이 급증했다. 2019년 4월 시행 이후 "위반인 줄 모르고 샀는데 평생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는 호소가 빗발친 것이다.

박 의원은 이번엔 '양성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6~7년마다 위반 건축물을 눈감아 주는 양성화가 주기적으로 진행되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는데 다시 한번 해주겠다는 뜻이다. 성난 소유주들을 달래주려는 것이다. 이런 양성화 법안은 억울하다는 민원이 많은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7개나 발의됐다. 하지만 건축법을 잘 지킨 사람들과의 형평성, 언젠가는 양성화될 것이라며 불법 증축이 다시 또 급증할 가능성 때문에 법안 통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간 양성화는 모두 5차례 있었다. 일조권 침해, 안전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그저 눈 감아 주는 일이 반복돼왔지만 위반 건축물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은 크지 않았다. 국토부는 현재 장경태 의원을 통해 위반 건축물 실태 조사를 매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조사가 잦아지면 사용 승인 이후 위반을 저지른 건축주를 적발할 가능성이 커지긴 하겠지만 현재의 처벌 수준으로는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건축주는 놔두고 소유자에 대한 처벌만 강화했다가 민원이 늘면 다시 양성화해주는 방식으로는 위반 건축물 증가를 막을 수 없고 '억울한 호소'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위반을 저지른 건축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 아래 주소로 접속하시면 음성으로 기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https://news.sbs.co.kr/d/?id=N1006383402 ]

장훈경 기자rock@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