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제게 뿌리내리기 전에

한겨레 2021. 7. 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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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엄마아들 귀농서신
꽃길을 기대하지 않아요. 멀리서 보기에 꽃길이어도 걷는 사람에겐 가시밭길이라는데, 시골살이는 멀리서 보기에도 고되어 보입니다. 도시의 언어로 시골을 표현하자면 개발제한구역입니다. 농촌의 경제적 가치가 연간 82조원이니, 관광자원이니 하는 소리는 도시가 시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낼 뿐이에요.

선무영 ㅣ 시골로 가려는 아들·로스쿨 졸업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에 요란한 소나기를 만났어요. 지하철역 앞에서 할머님 한분이 제 우산 속으로 쏙 들어오셨습니다. 시장에 다녀오시는데 우산이 없으시다고요. 그렇게 반강제로 잠시나마 1동 사시는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결혼했냐”, “아이는 있냐”는 질문까지는 자연스럽게 잘 넘어갔는데 “무슨 일 하냐”는 질문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시골에 가 살려고 준비 중이라 말씀드렸더니 벌컥 성을 내셨어요. 요새 도시 사람들은 시골만 가면 뭐 다 해결되는 줄 아는 모양이라고 색시 고생시키지 말라며, 본인 고생하신 이야기를 한참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내 집 앞이라 대화는 마무리되었어요.

꽃길을 기대하지 않아요. 멀리서 보기에 꽃길이어도 걷는 사람에겐 가시밭길이라는데, 시골살이는 멀리서 보기에도 고되어 보입니다. 말씀대로 농사지어서 돈을 벌기란 어렵습니다. 또 병원, 학교, 학원, 영화관, 햄버거점조차도 제대로 찾기 어렵죠. 도시의 언어로 시골을 표현하자면 개발제한구역입니다. 농촌의 경제적 가치가 연간 82조원이니, 관광자원이니 하는 소리는 도시가 시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낼 뿐이에요. 농촌의 가치가 82조면, 도시의 가치는 8200조쯤 되겠죠. 도시의 입장에서 시골을 보지 않고, 시골이 어떤 점에서 다른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도시는 ‘직장’과 ‘효율’로 대부분 정리됩니다. 산업화 시절, 도시는 큰 ‘공장’과 함께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공장을 돌릴 노동자가 필요했고, 시골 살던 농민들을 도시로 모아야 했습니다. 물건은 최대효율을 위해 필요보다 많이 만들어졌으며, 이런 물건들은 아름다운 광고로 예쁘게 포장되어 노동자에게 팔렸습니다. 그렇게 노동자는 소비자가 됩니다. 땅이라는 생산자본에서 멀어진 노동자는 공장이라는 직장 주위에 모여 살면서 다른 의미의 자본을 얻었습니다. 직장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 큰돈을 들여서 아파트를 샀죠. 이제 노동자는 도시를 떠날 수 없게 됩니다. 가진 돈으로는 장만하기 어려운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자본가의 손을 빌렸기 때문이죠. 이제 20년 정도 직장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50년 동안 아파트값만 올랐을 뿐 이런 도시 이야기가 달라졌나요. 편리함과 아파트값 오르는 재미에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아 보입니다만, 저는 도시가 제게 뿌리내리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효율적이라는 도시의 삶조차 이제 의심됩니다. 서울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 사려면, 괴산에 마당 넉넉한 집을 짓고도 신형 전기차와 1톤 트럭, 3000평 농지를 살 만한 돈이 필요해요. 아파트값이 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케 집을 사서 값이 크게 올라도 이 집이 오르면 저 집도 오르죠. 결국 한적한 곳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전세살이 하며 떠돌아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로 저는 도시에서 아파트를 살 마음이 없어요. 직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간계에 큰 역병이 돌아 재택근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재택근무는 인터넷만 되면 가능하잖습니까. 시골에서 하면 어떨까요.

제가 생각하는 시골은 ‘가족’이고 ‘건강’입니다. 마을의 시작이 가족이었죠. 그런데 직장과 효율을 위해 가족은 흩어졌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이 없는 사람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미래가 촉망받는 탄생과 육아, 교육은 필요 이상의 전문가에게 맡기게 되고, 미래에 기대할 것이 없는 늙음과 죽음은 싼값에 맡겨지지 않습니까. 앞으로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은 낙오되어 무시받죠. 우리 아이가 보통이 되지 못할까 봐 효율적이지 못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습니다. 여차하면 ‘그래 농사지어라, 사업해라’ 할 바탕을 제가 마련해두고 싶어요.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 걱정하며, 매달 보내는 용돈으로 죄스러움을 씻고 싶지 않습니다. 10년차 소농인 어머님의 어려움이 제 어려움이죠.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습니다.

도시도 시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시골에서 겪는 모든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겠다 싶은 요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농가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판로 개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손으로 지은 농작물을 전부 직접 팔 수 있으면, 거기에 마을 작은 농가들의 농작물까지 팔아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족하지만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던 아들입니다. 어머니의 며느리는 현직 디자이너고, 맏사위는 잘나가는 개발자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가족끼리 뭉쳐서 일을 도모하면 보시기에 좋지 않을까요. 와이파이 신호 세개면 어떤 일이든 벌일 수 있어요. 어머니가 애써 기르신 감자 옥수수, 제가 팔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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