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을 적 먹어둬야 해"라던 이들의 꿈

한겨레 2021. 7. 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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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이맘때쯤 나는 중국 하얼빈에서 현지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만난 리 아주머니를 돕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브라질이나 인도 같은 대국이 방역에 실패하고 자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 당·국가가 14억의 민생과 안전에 쏟은 노력을 무시할 순 없다.

15년이 지난 지금, 딸이 자기네보다 환경이 조금 나은 사람한테 시집갔으면 좋겠다는 리 아주머니의 꿈이 실현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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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세상읽기

조문영 ㅣ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5년 전 이맘때쯤 나는 중국 하얼빈에서 현지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만난 리 아주머니를 돕고 있었다. 폐지를 수집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주머니는 고향의 토지를 정부에 강제로 뺏겼다며 기자로 보였던 내게 도움을 청했다. 하얼빈에서 서너시간 걸리는 농촌을 오가며 1년 가까이 계속된 토지 찾기는 결국 수포로 끝났지만, 촌민위원회나 정부 기관을 방문할 때는 잠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신나서 어쩔 줄 몰랐다. 한사코 자기가 밥을 사겠다며 식당에서 요리 한 접시를 시키면 남은 밥을 쓱쓱 비벼 양념까지 해치웠다. “원래 못사는 사람들은 일찍 죽어. 살아 있을 적에 무조건 많이 먹어둬야 해.” 아주머니는 만날 적마다 자신과 나의 공통점을 찾곤 했다. “인류학”, “미국 유학”, “박사과정생” 같은 소개말은 들어도 익숙지가 않았다. 대신 한국에도 농촌이 있는지, 닭, 소, 돼지를 키우는지, 숯불에 감자를 구워 먹는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좋아했고, 결국 자기나 나나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게 공통점이 아니겠냐며 혼자 너털웃음을 웃었다.

오랜만에 리 아주머니를 떠올린 건, 지난 7월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행한 연설 때문이다. 연설에서 그는 중국이 빈곤 퇴치를 통해 공산당의 첫번째 100년 목표인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실현을 달성했다고 자축했다. 올해 초 중국 국무원이 ‘탈빈곤 백서’를 발간하면서, 개혁개방 이후 (같은 기간 전세계 빈곤 인구의 70% 이상인) 7억7천만명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음을 대내외에 공표한 터였다. 하지만 중국이 강조하는 빈곤 퇴치의 ‘세계적’ 의의는 코로나19 초기 방역 실패와 정보 은폐가 가져온 ‘세계적’ 재앙에 빛이 바랬다. 오히려 중국의 빈곤선이 국제 기준에 못 미치고, 관료들이 성과 압박에 시달리고, 정부와 기업이 빈곤 퇴치에 투입한 자금이 유용되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보도된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브라질이나 인도 같은 대국이 방역에 실패하고 자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은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 당·국가가 14억의 민생과 안전에 쏟은 노력을 무시할 순 없다. 농민의 지지 덕분에 혁명을 완수한 사회주의 공화국이 도농이원체제에 기반한 경제정책으로 농민을 사실상 구조적 희생양으로 만든 모순은 체제 정당성의 오랜 딜레마였다. 시진핑 집권 이후 노골화된 정치적 검열은 지식인 다수를 두려움과 무기력에 빠뜨렸지만, 선부론(先富論)을 넘어 공동부유(共同富有)를 외치고, 분배와 복지에 힘을 쏟는 당의 행보에 내가 만난 농민들은 대체로 환호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지지가 사회주의 중국의 성과인지, 아니면 깊은 내상을 드러낸 건지 불분명하다. 인프라 건설에서 부유한 지역으로부터의 후원까지, 빈곤 퇴치 사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일국 내 관계라기보다 마치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국제 개발 원조를 떠올리게 한다. 구호단체를 통해 아프리카 아동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감사편지를 받을 때, 그를 나와 같은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가 나와 같은 후원자 덕분에 영양결핍에서 벗어나고 학교에 가게 됐다는 소식에 기뻐하지만, 그가 언젠가 대학 진학이나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비판과 대안에 골몰하고, 여행과 출장으로 세계를 누빌 것이란 상상을 할까? 거꾸로, 그는 나 같은 제1세계의 시민한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 농민들이 공산당의 빈곤 퇴치 정책에 보이는 열렬한 호응,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려고 수천만원을 쓰는 도시 중산층과 자신의 운명이 애초에 다르다는 결정론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계급이 신분이 되어버린 역설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15년이 지난 지금, 딸이 자기네보다 환경이 조금 나은 사람한테 시집갔으면 좋겠다는 리 아주머니의 꿈이 실현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사족이지만, 민주화운동을 거치고 중국을 정치 후진국이라 비웃는, ‘공정’과 ‘불평등’이 연일 뜨거운 이슈인 한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꿈은 여전히 소박하다. 지난 5월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살던 한정민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고인은 생전에 동자동 공공주택 개발 소식을 환영하는 스티커를 방문에 붙였는데, 스티커에다 자신의 꿈을 다음과 같이 썼다. “욕실 있는 집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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