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20대 정당 대변인
[경향신문]
대변인은 정당의 입이다. 대표만큼이나 카메라 앞에 자주 서고, 대표 못지않게 발언이 인용되고 회자된다.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게 정치이니 대변인보다 더 주목받는 자리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말 잘하는 것만으로 유능한 대변인이 되지는 못한다. 현안을 재빨리 파악해 요체를 간결하게 정리해낼 줄 아는 실력이 필수다. 촌철살인의 위트와 풍자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당대표들이 저마다 자신과 가까우면서 유능한 대변인을 찾는 까닭이다.
대변인은 정치인으로 입신하는 길이기도 하다. 몇몇 유명 정치인은 지금도 대변인 당시 활약상으로 기억된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4년3개월 동안 여당인 민정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 ‘총체적 난국’ 등 지금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말들을 남겼다. 당시 야당(평화민주당) 대변인인 박상천 전 의원은 논리정연하고 직설적 단문의 논평으로 박 전 의장과 맞섰다. 둘은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언론인 출신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등 대변인만 다섯차례 지냈다. 섬세한 단어 선택으로 정평이 났다. 총리 시절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되받아친 답변 솜씨는 대변인을 거치면서 연마한 결과이다. 반면 불성실한 브리핑과 미숙한 현안 파악으로 망신당한 대변인도 부지기수다. 화려한 조명을 노리고 대변인 욕심을 냈다가 감당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국민의힘 대변인단에 1990년대생 두 명이 선발됐다.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을 위한 토론배틀 ‘나는 국대다’에서 1·2위에 오른 임승호(28)·양준우(27)씨가 그들이다. ‘30대 대표’에 이어 ‘20대 대변인’이라는 파격적인 조합이 한국 정당에서, 그것도 보수정당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복잡한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시시각각 치열한 논리 대결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20대 대변인이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임기응변이나 입심 대결의 서바이벌 오디션과 실제 정치는 다르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지금부터 진짜 검증대에 섰다고 볼 수 있다. 20대 대변인의 등장이 구태의연한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를 기대해본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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