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래 "7년 무명, 생계 위해 물리치료사 알바..'트전체'로 일상 달라져"[EN:인터뷰①]

이하나 2021. 7. 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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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글 이하나 기자/사진 정유진 기자]

가수 신미래가 ‘트롯 전국체전’에서 독특한 음색과 미모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데뷔 7년 만에 트로트계를 이끌 유망주로 떠올랐다.

2014년 ‘사랑이 필요합니다’로 데뷔한 신미래는 7년여 동안의 무명 생활을 거쳐 지난 2월 종영한 KBS 2TV ‘트롯 전국체전’으로 가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로 8도 올스타를 받은 신미래는 1940년대 축음기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음색으로 ‘꽃마차’, ‘꿈 속의 사랑’, ‘오빠는 풍각쟁이’ 등 경연 내내 주목을 받았다.

비록 결승 문턱에서 탈락 했지만 신미래의 일상은 ‘트롯 전국체전’ 출연 전, 후가 극명하게 달라졌다. 신미래는 최근 뉴스엔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일도 세 달에 한 번 있었는데 요즘은 일도 많이 늘었고, 팬들도 많이 늘었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구독자도 늘었고, 방송에 나가기 전에는 팬카페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2천 명 정도 됐다”며 “요즘은 식당에 갔을 때 어머니들이 알아봐 주시더라. 진짜 신기하고 감사했다. 7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트롯 전국체전’ 출연 당시 신미래는 가수와 물리치료사를 병행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가수 일만으로는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물리치료사 업무는 꿈을 조금 더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신미래는 “중학교 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일단 먹고살 만한 걸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다. 정말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가수하면서 느꼈다. 데뷔했을 때는 3~4년 정도만 지나면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라며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내가 괜히 가수를 선택해서 겪지 않아도 될 우울함을 느끼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고향 춘천에서는 레스토랑 서빙, 현수막 거는 아르바이트, 신발가게, 고기집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춘천에는 물리치료사 단기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4년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물리치료사가 기술직이라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세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신미래는 힘든 상황에서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엄마가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가수를 하기로 했을 때 그 뒤로는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일이 없고 내가 우울해 할 때마다 ‘그만해도 돼’라고 위로해주셨다”면서 “아빠는 ‘너는 잘 될 애니까 조금만 더 버텨 봐’라고 해주셨다. 두 분 모두 큰 힘을 주셨다”고 감사를 전했다.

‘트롯 전국체전’을 위해 식단과 꾸준한 운동까지 병행하며 5kg을 감량했다는 신미래는 모든 무대 의상, 헤어스타일 등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매번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신미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오빠는 풍각쟁이’를 꼽았다.

신미래는 “선곡할 때마다 자신 있는 노래를 했기 때문에 다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오빠는 풍각쟁이’는 옛날부터 불러왔지만 그렇게 예쁜 의상과 댄서에 무대까지 옛날 감성을 재현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 가서 그렇게 해보겠나”라며 “이 곡 덕분에 SBS ‘스타킹’도 나가고 JTBC ‘미라클 코리아’라는 프로그램도 나갈 수 있었다. 만요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 소중한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준결승전 1차에서 3위에 올랐던 신미래는 당연히 결승에 오를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라운드 시청자 판정단 점수 때문에 종합 순위 10위로 결승에서 탈락했다. 출연자들, 심사위원들은 물론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까지 신미래의 탈락은 충격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신미래는 “그때는 정말 멍했다. 1차전에서 점수가 너무 좋아서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화가 나거나 슬프고 억울한 감정보다는 다음 날까지도 멍한 상태였다. ‘뭐가 문제였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라며 “장녀라 부모님 속상하게 하는 걸 싫어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부모님께는 미리 전화하지 말라고 말씀을 드렸다. 어차피 이미 탈락한 상황인데 마음 아파 하면 뭐하겠나. 맛있는 것 시켜 먹고 마음 다스리고 부모님과도 통화 했다”고 말했다.

신미래는 마지막 무대가 된 준결승 2차전에서 선곡한 ‘고장난 벽시계’를 가장 힘들었던 무대로 꼽았다. 당시 무대를 준비하던 중 노로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신미래는 “목살 샐러드를 시켜 먹고 다음날 일어났는데 몸이 너무 아프더라. 병원 가서 링거를 맞고 4~5일을 계속 아팠다. 고장난 상태에서 벽시계를 부르고 탈락하고 다시 고장이 났다(웃음)”라고 회상했다.

신미래는 자신의 독특한 음색이 또 다른 제약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놨다. 신미래는 “당시 ‘고장난 벽시계’를 부르고 탈락하고 난 후에 ‘그러니까 ’홍콩 아가씨‘ 선곡 했어야지’라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그분들도 경연인데 더 잘할 수 있는 걸 했어야 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말씀해주셨다는 걸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쩌다 보니 경연 내내 만요 위주의 선곡을 했다. 나는 나훈아, 심수봉 선생님 노래처럼 다른 트로트도 잘할 수 있는데 대중에게 만요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멋있게 준비해서 무대를 잘 마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쉽게 됐다”고 전했다.

KBS 시청자권익센터에 청원까지 오를 정도로 신미래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팬들의 응원 속에 신미래는 TOP8과 함께 ‘2021 트롯 전국체전 대국민 희망 콘서트’ 출연자로 합류했다. 당초 7월 10~11일 KSPO DOME(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1 트롯 전국체전 대국민 희망 콘서트’ 서울 공연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9월로 연기 됐다.

신미래는 “내 노래 중에 ‘째깍째깍’이라고 있는데 이번에 EDM 버전으로 신나게 편곡했다. 싸이 선배님의 말춤을 만들어주신 이주선 단장님이 안무도 맡아주셨다. 원곡이 잔잔하고 몽환적인 노래였다면 이번에는 내 음색에 맞게끔 음정도 높이고 발랄한 안무도 더해서 멋지게 보여드리려고 준비 중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멋지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뉴스엔 이하나 bliss21@ / 정유진 noir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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