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우리 몸은 당신의 식민지가 아니다

한겨레 2021. 7. 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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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칼럼]강대국 간의 대리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과거 우리 선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류탄을 던졌다면, 이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다시 물통 폭탄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공중보건은 무기가 아니다.

신영전

저승을 먼저 차지하려 강대국들이 서로 다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에 나오는 장면이다. 죽었다가 잠시 후 되살리는 기술을 두고 강대국들이 경쟁을 벌이면서 점차 그 시간이 늘어나고, 마침내 저승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관광상품까지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저승 여행길이 사람들로 북적거리자 어김없이 그곳에는 상업광고들이 제일 먼저 들어선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지난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때문이다. 공동성명에는 인도·태평양 지역 내 감염병 대유행 대응체계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선도그룹에서 한국의 개입을 확대하고, 글로벌보건안보구상 활동을 위해 2021~25년 사이 2억달러 지원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한국과 미국은 지속 가능하며 촉매 역할을 할 새로운 보건안보 재정운영 구조를 만들고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그룹을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글로벌보건안보구상이란 감염성 질병으로 인한 세계적 보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 시절 만들어진 국제조직이다. 초기 44개 나라로 출범했으나 현재 70개 나라가 참여한다. 그러나 글로벌보건안보구상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하에 있는 나라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 조직은 기존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을 위축시킨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 탈퇴를 선언했던 것도 이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은 다시 세계보건기구에 복귀했으나 여전히 미국 주도의 글로벌보건안보구상으로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 이것은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 등 대규모 감염병 유행에 기존 강대국 힘의 원천이었던 핵무기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이제 공중보건을 새로운 무기로 삼으려는 것이고 거기에서 한국이 행동대장 역할을 담당하라는 것이다. 2013년부터 5년에 걸쳐 주한미군에 의해 주피터(JUPITR)라는 첨단 생물무기 관련 시설이 부산에 설치·운영되었고, 2019~20년에 켄타우로스(CENTAUR)라는 현장 생물무기 관리체계의 기본형이 국내에서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글로벌보건안보구상과 연계될 경우, 한국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 갈등의 소용돌이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의 국제보건 전문가들이 글로벌보건안보구상 관련 움직임에 반대한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견제라는 정치적 성격이 워낙 강해 이것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경우, 중국을 비롯한 친중 국가들의 반발도 커질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글로벌보건안보구상과 같은 조직이 출현한 이유는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강대국과 대자본이 더는 점령할 땅을 찾지 못하자 이제 우리의 몸을 새로운 식민지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이미 우리 몸의 장기와 세포를 지나 유전자와 염기서열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 몸 안에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를 심어 내 몸무게, 심박동, 유전 정보, 심지어 오늘 걸은 걸음 수와 먹은 음식에 이르기까지 나를 ‘고유한 나’이게 하는 은밀한 개인 신체 정보까지 빼가고 있다. 최근 인터넷 기업들의 호황 뒤에는 바로 이런 우리 몸에 대한 감시와 교묘한 정보 수집이 있다.

“몸은 정치적 투쟁의 핵심적인 장소를 이루며, 이것이 보건의료부문만큼 명백한 곳도 없다”는 사회학자 세라 네틀턴의 예언이 이제 본격적인 현실이 되었다. 홀로코스트, 731부대, 터스키기 인체실험 등 약자의 몸을 유린했던 오욕의 역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작금의 상황은 팬데믹이라는 인류의 위기 앞에서 거대 국가·자본·과학기술의 담합체가 새로운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철학자 푸코가 말한 ‘생체권력’ 구조를 전지구화 규모로 확대하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후 추진되는 한국의 백신 허브 구상 역시 이 글로벌보건안보구상 프로젝트의 하부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 땅에 만들어질 백신 허브는 ‘제국의 무기창고’가 아니라 ‘인도주의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 식민지배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나라가 이 새로운 식민주의에 앞장서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강대국 간의 대리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상황은 엄중하다. 과거 우리 선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류탄을 던졌다면, 이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다시 물통 폭탄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공중보건은 무기가 아니다. 우리 몸은 당신의 식민지가 아니다.

한양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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