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남자신발

- 2021. 7. 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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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열리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맞은편 가득 늘어놓았다, 슬리퍼까지 항상 벗어두던 그 자리에다 남은 자를 걱정하는 떠난 자의 갸륵한 배려 죽음과 삶의 동거방법이구나 날마다 이 구두로 나갔다가 돌아와 제자리에 벗어둔다고 뭔지도 모르는 온갖 상상공포에서 독거(獨居)를 지켜주는 친숙한 발 냄새.

가득 차 있던 신발들이 어느 순간 현관에서 사라졌습니다.

현관엔 신발이 두 켤레가 놓여 있다가 이젠 한 켤레만 동그마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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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현관문 열리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맞은편 가득 늘어놓았다, 슬리퍼까지
항상 벗어두던 그 자리에다
남은 자를 걱정하는
떠난 자의 갸륵한 배려
죽음과 삶의 동거방법이구나
날마다 이 구두로 나갔다가
돌아와 제자리에 벗어둔다고
뭔지도 모르는 온갖 상상공포에서
독거(獨居)를 지켜주는 친숙한 발 냄새.
남편과 아이들이 외출했다 들어오면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 던져

현관은 늘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신발을 제자리에 가지런하게 벗어 놓으라는 잔소리가 입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점차 자라 결혼해 분가하면서

가득 차 있던 신발들이 어느 순간 현관에서 사라졌습니다.

현관엔 신발이 두 켤레가 놓여 있다가 이젠 한 켤레만 동그마니 남았습니다.

물끄러미 현관을 바라봅니다.

출근하며 잘 다녀오겠다는 남편의 톤 낮은 목소리와

학교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의 높이 굴러가는 말소리,

차 조심하라는 나의 잔소리가 공허하게 들려옵니다.

조용히 일어나서 신발장을 열어봅니다.

얼마 전 하늘나라에 먼저 간 남편의 구두와 슬리퍼를 내 신발 곁에 나란히 놓습니다.

뭔지도 모르는 온갖 상상과 공포 속에서 그의 친숙한 발 냄새가 홀로 남은 나를 지켜줍니다.

그이의 신발과 나의 신발, 죽음과 삶이 나란히 공존합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림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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