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차별금지법의 '차별' 문제

김미경 2021. 7. 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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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차별금지법이 차별받고 있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 이어 1년 만인 올해 6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평등에 관한 법'을 대표발의하면서 차별금지법이 국회 논의 대상에 오를지 관심을 받았다. 더욱이 올해 6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성원 조건인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차별금지법(평등법 포함)을 논의하는데 인색하다. 장 의원의 차별금지법은 지난해 6월29일 발의된 뒤 같은 해 9월21일 법사위에 상정돼 1차 논의를 거쳤으나 더 이상의 진척은 없다.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차별금지법은)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을 상당히 많이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해외사례를 보면 다수 국가들이 이런 법을 갖고 있다"면서 "그래서 현재의 국제사회의 추세로 봐서 대한민국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국민에게 보장하는 그런 취지에서 차별금지법은 추세적으로 또 현재 시점에서 있을 수 있는, 또 있어야 되는 법안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법안의 논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지만 국회의 논의는 거기서 멈춰 있다.

장 의원의 차별금지법 내용을 보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뒤 이어 발의된 이 의원의 '평등법'도 대체로 비슷하다. 법안은 △평등법의 목적 △차별의 기준과 용어의 정의 △차별에 해당하지않는 기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영역 적용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 및 실행 등 책무와 국가 및 지방자치 단체의 차별시정 의무 △차별의 시정권고 △차별의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평등법 2조에서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을 갖고 있음을 선언하고, 4조 차별금지와 개념 조항에서는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어떠한 사유로도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정의했다. 단서조항으로는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 △다른 법률의 규정에 따라 차별로 보지 아니하는 경우는 차별로 보지않되, 그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해서는 안되는 조항을 덧붙였다.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에서 쟁점이 되는 조항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등이다. 종교적 사유나 사회적 불안 등을 고려하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로 납득할 만한 부분이 있다. 종교계는 차별금지법에 따라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면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우려하고 있다.

종교계의 우려가 기우에서 끝날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지는 당연히 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조항을 이유로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국회의 직무유기다.

무엇보다 국회가 법안 심사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사회적 논의 숙성이 덜 됐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회만큼 논의를 숙성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은 없다. 제정법인 차별금지법은 공청회라는 공식 창구를 통해 논의를 진행할 기회도 만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차별금지법이) 입법 단계에 이르기에는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고 한 발언은 매우 아쉽다.

이 대표는 지난달 17일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질문이 나오자 "제가 미국에서 보면 동성애와 동성혼 같은 것도 상당히 구분돼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혼재되고 있다"며 "(입법은)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한국사회 공론장에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차별금지법을 추진했고, 2006년에는 대국민공개 방식으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차별금지법 인권위 안을 만들어 같은 해 7월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가 만든 2006년 법안에도 차별금지 사유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성적지향' 조항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무려 18년이나 된 사회적 논의가 얼마나 더 숙성해야 국회에서 다룰 수 있는지 궁금하다.

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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