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이룬 기적, 역대 대통령의 功이 있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2021. 7. 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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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이승만 토지개혁… ‘국민’ 탄생, 박정희 “할 수 있다” 정신 심어
전두환 임기 단임 약속 지켜… 노태우 북방외교로 러·중 수교
김영삼 금융실명제로 부패 끊고 김대중 IMF탈출·정치보복 안해
대한민국 역사, 부정될 수 없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야경./박상훈 기자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책들이 서점마다 널려있다. 미 점령군과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대 대통령 중 국민 모두에게 존경받는 분이 하나도 없다. 망명하고 암살당하고 감옥에 가거나 자식·형제가 감옥에 가고 자살하고 지금도 두 대통령이 투옥 중이다. 이런 대통령들을 둔 대한민국은 놀랍게도 세계 최고 부국들의 모임인 G7에 초대받고, 가장 유력한 차기 멤버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생산력을 갖추고 미래 강대국으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 엉망진창 리더십 아래서 대한민국이 영국·프랑스와 견줄 정도의 나라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과(過)는 접어두고 공(功)만 평가해보고자 한다.

1948년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식 및 제3회광복절 기념식/ 대통령기록관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국제 정세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 대통령은 건국한 공만으로도 추앙받아 마땅하다. 그의 최대 업적은 토지개혁이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북한이 개전만 하면 남한 인민 수백만이 봉기하여 대한민국을 무너뜨릴 줄 알았다. 그런 일은 없었다. 한국 농민들은 토지개혁으로 이미 자기 땅을 갖는 지주가 되었고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해방 직후 한국은 아시아에서 토지 소유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였다. 이승만은 일제에 몰수당한 모든 토지를 소작농에게 분배하고 대지주제를 혁파하고자 했다. 진보적인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에 임명하여 토지개혁을 주도하게 했다. 인촌 김성수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천만평에 달하는 땅을 나라를 위해 포기하고 지주들을 설득했다. 제헌 국회는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조항을 담은 헌법을 제정한다. 토지개혁으로 양반 지배층은 몰락하고 사실상 대대로 농노였던 대다수 한국인들은 시민 의식을 갖는 국민으로 성장한다. 필리핀, 브라질 등 우리보다 한참 앞섰던 나라가 뒤처진 것은 몇몇 대지주가 국부를 장악한 상황에서 균질한 시민 사회가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생 독립국가 중 한국만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빠르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토지개혁으로 그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967년에서 1968년사이의 정부 활동상과 사회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제7권이 국정홍보처에서 발간됐다. 사진은 1968년 12월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대통령./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공은 우리 국민을 일대 개조한 것이다. 수천 년 가난에 자포자기하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일깨워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었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박 대통령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전두환 대통령은 좋은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임기 단임 약속을 처음으로 지켰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 과정에서 ‘물태우’란 소리를 들으면서 분출되는 갈등을 잘 관리했다. 그의 진가는 외교다. 냉전 붕괴의 대전환기에 적극적인 북방 외교를 통해 소련, 중국과 수교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이끌어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0월 10일 북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대통령과 오찬장으로 가고 있다./조선일보 DB

김영삼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금융 실명제를 도입했다. 수천 억 단위였던 정치 부패가 수억·수천 만으로 축소되었고 불법 대북 송금도 불가능해졌으며, 이건희 회장 가족은 11조의 상속세를 낸다. 그의 결단으로 정경 유착,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투명하고 공정한 나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또한 취임 직후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다. 하나회를 청산하지 않았다면 그의 지적대로 김대중·노무현은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증유의 IMF 사태에 직면하여 진보적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민영화, 구조조정, 공무원 감축을 단행하여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모진 정치적 고초를 겪었지만 정치 보복을 결코 하지 않았다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권위주의를 타파했다. 좌충우돌 소신 있는 언행으로 양 진영에서 모질게 비난받았지만, 오히려 퇴임 후 인간적 매력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세계 대공황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으로 세계가 큰 고통을 겪었다. 우리만 그냥 넘어갔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이다. IMF 사태와 같은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국제 인맥을 총동원하여 전격적으로 900억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OECD 국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했다. 또한 천문학적 집값 상승을 잡고 서울 집값을 3.52% 떨어뜨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권마다 진영 논리로 본다면, 그 역사는 5년마다 부정당할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의 피와 땀과 함께 역대 지도자들의 빛나는 업적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 대한민국 역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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