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남편과 실타래를 풀다가

김광희 2021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2021. 7.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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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홑청을 빨아 널어 놓고 홑청 시칠 무명실 타래를 꺼내어 남편과 마주 앉는다. 손을 내 쪽으로 나란히 시키고 내 운명의 실타래를 걸었다. 인연의 실오리가 솔솔 내게로 잘도 풀려 나온다. 나는 무슨 연으로 내 부모 형제의 실타래에서 이 남자의 실타래로 옮겨와 풀어내고 있는지. 누에 입에서 명주 빠져나오듯 남편의 몸에서 실로 빠져나오는, 운명인지 필연인지 악연인지, 내게 감긴다. 실꾸리(둥글게 감아 놓은 실타래)가 커진다.

여자가 삼 년을 길쌈하지 않으면 앞을 소쿠리로 가려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의복은 세상과 연결되는 일을 으뜸으로 여기고 살아온 동방예의지국의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누에고치나 무명을 잦아 꼬거나 삼을 째서 무릎에 비벼 꼰 실도 있고, 기계로 두 올을 서른두 번 이상 꼰 극세사가 있고, 동아줄처럼 굵은 실이 있다. 옷감을 연결하고 묶는 끈, 옷이나 모양의 형태를 유지하는 재봉실, 공업용 건축용 구성 방법에 따라 무엇과 연결하려 묶어두는 단사(單絲)·합사(合絲) 등이 있다.

실은 생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어머니와 연결되던 탯줄을 자르고, 그 끝을 세상을 사는 무한의 힘과 연결하는 실로 묶어야만 아기는 살 수 있다. 그 아이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삼신상에 온 타래의 실을 올리고 백일·돌상에도 올린다. 음식을 잘못 먹고 목에 가시가 걸리면 목에 실을 걸었다. 그러면 희한하게 목에 걸린 가시가 내려갔다. 젖니가 흔들거리면 두세 뼘 길이의 실 한 오리면 해결이 났다. 내 또래가 클 때 실뜨기 놀이는 다 해 봤을 것이고, 옛날에는 장관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높이를 재는데 명주실꾸리를 풀어서 재었다고도 한다. 폭포수의 수천 가닥의 실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인연이 생긴 것이다.

문밖에는 소리 없이 실비가 내린다. 잠시 실비에 한눈팔다가 남편이 실타래를 놓치는 바람에 실이 얽혀버렸다. 얽혀버린 꼴이 시시때때로 꼬이는 내 삶과 어쩌면 그렇게도 같은지. 삶이 한창 꼬일 때 풀릴 꼬투리는 찾지 않고 네 탓이니 내 탓이니 실랑이만 한다. 결혼할 때 어머니께서 반짇고리에 실과 바늘을 넣어주시고 따로 청실홍실을 고운 꽃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청실홍실 엮어서 고운 마음을 잘 수놓아 오래오래 잘 살라는 뜻이었는데 고운 마음으로 수놓기는커녕 수시로 엉켰다. 그럴 때마다 실마리 풀기를 포기했다가 다시 마음 다져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타래로 얽힌 이 남자와 나 사이에 풀리지 않는 삶에서 술술 풀릴 실마리를 찾아 다시 머리를 맞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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