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가 결국 1년이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여전히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은 존재하지만, 전 세계 스포츠팬의 열정과 염원을 담아 오는 7월 23일 도쿄 올림픽이 개막한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선전해 온 만큼 도쿄 올림픽에 대한 국내 팬들의 기대감도 하늘을 찌른다. 국내 야구선수 중 최정예 멤버들로 구성돼 별들의 잔치라 불리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이번 호 ‘더그아웃 먼슬리’에서는 그들의 활약상을 되돌아봤다. (6월 4일 작성)
에디터 박소정 사진 한국야구위원회(KBO)

#대서사시의 서막
현재까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화려한 우승 전적과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 역사의 출발점엔 1982년 제27회 IBAF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어우홍 호’가 있다. 어우홍 호에는 김재박, 선동열, 장효조, 최동원 등 KBO리그의 레전드 선수들이 합류하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대서사시의 서막을 알렸다.
미국전과 대만전에 선발투수로 출전한 선동열은 2경기 동안 18이닝 10피안타 1실점의 라운 투구력을 보이며 KBO리그 레전드 투수의 탄생을 예고했다. 대만전에선 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재박, 장효조, 한대화 등으로 꾸려진 타선도 득점 지원으로 투수들의 어깨에 힘을 실으며 최종성적 8승 1패로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경기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결승전 당일 오전에 호주와의 서스펜디드 경기 5이닝을 치르는 핸디캡을 가지고 결승전에 임했다. 하지만 선발투수 선동열의 9이닝 2실점 호투, 일본 배터리의 허를 찌르는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 등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많은 국민에게 감동과 환희를 줬다. 당시의 우승은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승리했다는 사실과 KBO리그 레전드 선수들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됐고, 1982년 출범한 KBO리그의 흥행을 이끌었다.
#프로 무대 스타들의 활약
후배들 또한 선배들이 터놓은 물꼬를 따라 야구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이어갔다. 1998 방콕아시안게임은 국내외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야구팬을 설레게 했다. 프로선수 출전이 처음으로 허용되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와 당시 국내 최고 스타였던 김동주, 김병현, 이병규, 진갑용, 홍성흔 등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김병현은 중국과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12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대회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막강한 타격력을 보인 대표팀은 일본을 상대로 13대 1의 콜드게임 승리를 따내 우승했다. 국민 투수 박찬호는 7이닝 동안 단 1점만을 허용하며 일본 타선을 꽁꽁 묶었다. 아시안게임 첫 우승을 달성한 1998 방콕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드림팀으로 꼽힌다.

#야구 부흥기를 이끌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명경기를 뽑으라 하면 상당수가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떠올린다. 전 세계 야구팬이 지켜보는 지구 최대 스포츠 축제에서 미국, 일본, 쿠바 등 쟁쟁한 팀들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대회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야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져 KBO리그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9전 전승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매 경기가 다 명경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쿠바 야구 대표팀을 만나 치른 결승전은 언제 봐도 짜릿함을 준다. 전통 강자인 쿠바를 만나는 만큼 고전이 예상됐지만,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도 강민호, 김현수, 이대호, 이승엽 등 베스트 멤버들로 라인업을 꾸려 대항했다.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8회까지 2실점으로 쿠바 타선을 틀어막았다. 당시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선발투수 류현진에게 9회 말 등판을 맡겨 결승전 완투승이 눈앞에 있었지만,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해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때 판정에 항의한 강민호가 퇴장당한 상황에서 부상을 겪고 있던 진갑용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마운드에는 ‘여왕벌’ 정대현이 올랐다. 자칫하면 역전을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대현이 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상대로 땅볼 타구를 유도해 박진만, 고영민, 이승엽으로 이어진 6-4-3 더블 플레이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우승 드라마가 탄생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환호하며 우승의 순간을 만끽했다. 베이징 키즈 출신인 한화 이글스 노시환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최고의 명경기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중계를 보면서 우승의 순간에 정말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리틀야구의 저력
대한민국 성인 야구 대표팀의 국제대회 역대 선전도 감명 깊지만, 자라나는 야구 꿈나무들의 국제무대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4년 미국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2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리틀야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야구팬의 관심이 집중됐다. 대한민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준결승전에서 일본 대표팀을 12대 3으로 꺾은 뒤 결승전에서 미국 일리노이주 리틀야구 대표팀을 상대해 최종 스코어 8대 4로 승리하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11경기 전승 우승을 기록했다. 많은 이목이 쏠려 부담스러울 법도 한 결승전이었지만, 성인 선수들 못지않은 침착하고 안정적인 수비와 더불어 홈런 2개를 포함한 뛰어난 타격까지 더하며 월드 챔피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대한민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우승이 확정된 뒤 ‘우사인 볼트 세리머니’를 통해 우승의 기쁨을 선사했다. 야구 강국의 리틀야구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줬고 이후 리틀야구 열풍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에디터가 뽑은 대표팀 명경기
<더그아웃 매거진> 에디터들이 뽑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명경기는 무엇인지 아래에서 만나보자.
김나현 에디터: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하는 야구 국가대항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의 초대 대회였던 2006년 WBC 본선, 2라운드 1조 3경기 미국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기적적인 승리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대표팀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라인업으로 양 팀 선수들의 몸값이 ‘46억 대 9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여서 이미 패배를 직감했던 경기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경기 내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선발 투수 손민한은 3이닝 1실점으로 미국 타선을 제압했고 국민 타자 이승엽의 1회 말 초구 홈런으로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후 4회 말 김태균의 대타로 출전한 최희섭의 3점 홈런으로 결과는 7:3 완승. 경기 종료 직후 ‘Who are these guys, anyway?’라는 놀라움이 담긴 문장이 ‘MLB닷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리 주눅들 필요도, 일찍 포기할 필요도 없다. 기적을 선사했던 2006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경기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송서미 에디터: 8월 23일 야구의 날
야구의 날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KBO리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온 국민의 가슴을 자부심으로 부풀게 만든 그날이 역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명경기가 아닐까 한다. 쿠바 대표팀과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식당에 모였을 때는 어린 시절 경험한 2002년 월드컵만큼의 열기가 느껴졌다. 1회부터 이승엽의 투런포가 터지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물론 이어진 쿠바의 솔로포에 금세 긴장했지만, 한 점 차 리드가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이미 기분은 승리상태였다. 그런데 류현진의 완투승을 기대하며 평온했던 마음이 9회 말 만루 상황이 되자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긴장됐다. 함께 야구를 보던 이들 모두 극도로 민감해진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강민호까지 스트라이크 존 항의로 퇴장을 당하자, 식당에서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각종 욕설이 난무했다. 이후 정대현과 진갑용이 들어서고부터는 다시금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를 장식하는 더블 플레이가 나온 순간! 손님들의 환호성에 식당이 무너지는 듯했다. 다시 봐도 소름 끼치는 명경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던 야구의 날이었다.
이예랑 에디터: Back to 2008!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명경기는 단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경기들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결승전보다 더 결승전 같았던 준결승전, 바로 일본과의 경기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대표팀은 예선전에서 이미 일본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뒀고 준결승에서 다시 한번 맞붙게 됐다. 마운드엔 당시 신인이었던 김광현이 올랐고 선취점을 내주며 리드를 뺏겼다. 하지만 7회 말 대주자로 교체된 정근우가 빠른 발로 홈 플레이트를 훔치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고 경기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약속의 8회, 이승엽은 올림픽 내내 겪었던 부진을 딛고 우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포를 날리며 경기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우승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경기이자 숙명의 한일전. 또 한 번의 역전승을 거두며 온 국민의 만세 물결을 이끌었다. 이보다 짜릿하고 강렬한 경기는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조예은 에디터: 고전은 고전이다
2008년 여름을 기억하는가? 수많은 ‘베이징 키즈’를 만들어 낸 바로 그 경기가 떠오를 것이다. 2008년 8월 23일, 허풍 조금 섞어 대한민국 전 국민을 텔레비전 앞에 앉게 만든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말이다. 류현진이 한화를 넘어 국가대표 1선발로 뛰고, 국가대표 4번 타자 이승엽이 건재했다는 것만으로 볼거리는 충분하다. 석연찮은 판정이 이어지며 분노도 커졌다. 이용규의 사구 판정부터 불안했던 주심이 9회 말 강민호를 퇴장시키며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정대현, 진갑용 배터리였다. 운명의 순간 구리엘이 친 공은 거짓말처럼 더블 플레이 코스로 날아갔다. 그렇게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기적 같은 9전 전승 우승이 완성됐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쾌거다. 영향력도 상당하다. 수많은 야구팬의 유입으로 KBO리그는 다시 전성기를 맞았고, 많은 유망주가 야구공을 들었다. 지금까지도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라는 타이틀을 뺏기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림픽 우승을 거머쥔 그날을 ‘야구의 날’로 기억하고 있다.
전윤정 에디터: 국대는 역시 한일전
한일전 승리는 종목을 막론하고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쾌감과 흥분을 선사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명경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준결승 경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 경기는 단순히 9회 초 대량 득점에 성공하며 역전승을 거뒀다는 사실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경기였다. 첫째로, 우리 대표팀은 대회 개막전에서 이미 일본과 한차례 맞붙은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에게 타선을 완벽히 봉쇄당하며 5:0 패배라는 굴욕을 맛본 상황. 준결승 경기를 통해 이를 설욕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의미 있는 지점이었다. 둘째로, ‘오열사’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9회 초 대타로 나와 안타를 때려내면서 얼어붙은 타선에 불을 지핀 오재원은 타자일순으로 다시 타석에 섰을 때 담장 바로 앞까지 가는 큰 타구를 날렸고, 시원한 배트 플립을 통해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다가오는 7월 말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과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면 2015년 도쿄 대첩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나래 에디터: 우리 팀일 때의 든든함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아닌 상대 팀으로 나왔을 때는 무섭기만 한 선수들이 모두 우리 팀이 됐을 때 생기는 그 든든함이 있다. 국가주의를 지양하는 편이지만, 2014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대만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쟁취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을 보며 우리 팀이라는 결속력을 느꼈다. 대만에 선취점을 내준 뒤 5회 초 역전에 성공한 대표팀은 6회 말 대만에 재역전당하며 고전했다. 이렇게 지는 것인가 싶었던 순간 약속의 8회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고, 대표팀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역전의 역전의 역전’ 우승을 쟁취했다. 선수들이 대한민국 국기를 흔들며 뛰어나와 기뻐할 때, 내가 뛰어 우승한 것처럼 감동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팬들에게는 비가 쏟아져도 떠나지 않은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경기였고, 혹여 졌다고 해도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짜임새 있는 경기였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대표팀 응원단장들이 함께 응원해준 그 자리에서, 나라에 상관없이 야구팬이라면 다 같은 감동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많은 팬이 이 경기를 레전드로 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곽동희 에디터: 세기의 대결
너무나 아쉽고 뼈아파서 되레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경기가 있다. 바로 2009 WBC 결승, 한일전이다. 대회 초반 우리 대표팀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우승 멤버였던 국민타자 이승엽, 중심타선을 이끈 김동주가 엔트리에서 빠졌다. 반면 일본 대표팀의 라인업은 가히 역대 최강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스즈키 이치로를 비롯해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명포수 조지마 겐지가 안방을 맡았다. 투수진과 야수들도 당시 우리보다 한 수 위라고 여겼던 일본 프로야구의 올스타로 구성됐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일본 대표팀과의 대결에서 결승전 이전까지 4번을 만나 2승 2패로 동률을 이루며 절대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였다. 결승전 10회 초 임창용이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헌납한 장면은 두고두고 아쉽지만, 3:2로 뒤지고 있던 9회 말 투 아웃에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날린 ‘꽃범호’ 이범호의 동점 적시타는 다시 봐도 멋지고 드라마틱하다. 이 경기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아시아의 두 팀이 세계대회 결승 무대에서 만났다는 점이다. 이날 경기는 약 2천 700만 명이 시청해 당시 전 세계 스포츠 이벤트 시청자 수 6위에 랭크됐다. 세계적인 스포츠 라이벌 더비인 ‘뉴욕 양키스 vs 보스턴 레드삭스’, ‘레알 마드리드 CF vs FC 바르셀로나’와 같은 경기처럼 서방의 나라들이 주름잡고 있는 세계 스포츠 이벤트 무대에 아시아의 두 나라가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09 WBC 결승전은 비록 졌지만 잘 싸웠던 경기였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 반짝 성과가 아니며 우리 야구가 정말 우수하다는 것을 세계에 증명한 경기였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리벤지 매치가 성사돼 2009 WBC 결승전에서 남긴 아쉬움을 영원히 날려버릴 만한 우리 대표팀의 멋진 활약과 승리를 기대한다.

#도쿄 키즈의 탄생을 위하여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3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야구.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또다시 정식종목에서 제외될 예정이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하는 팬이 많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활약은 국내 야구팬은 물론이고 해외 야구팬의 기대감도 한껏 올려놨다. 이제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우승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큰 부담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선수 선발부터 시작된 논란이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용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축하보다도 비난이 쏟아졌던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2020 도쿄 올림픽 개막까지 남은 시간 동안 선수 선발부터 선수 간 호흡까지 빈틈없는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사명감을 지니고 본인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팬들은 더욱더 높은 평가 기준으로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활약은 ‘베이징 키즈’ 이후 ‘도쿄 키즈’의 탄생에 큰 자양분이 된다. 또한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로 은하수와 같은 장관을 이뤄서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에게 환희와 위로를 가져다주길 바란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3호 표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3호(7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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