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자연은 탁월함, 적자생존을 선택하지 않았다
기린의 긴 목, 적응 이득 없어, 진화론의 걸림돌
다윈 인위선택에서 자연선택을 유추한데 원인
적자생존과 신자본주의 결합, 1등신화 만들어내
밀로, '굿 이너프' 이론으로 새로운 진화론 제시
"자연은 무엇을 선택하거나 조작하지 않아"
미천하고 평범한 개체, 오류와 실패도 품어
우리는 자연생존에서 충분히 훌륭한 승자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기린의 긴 목은 먹이를 구할 때 유리하기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흔히 설명된다. 잘 알려진 진화론의 자연선택이론이다.
그런데 기린은 여전히 진화론자들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다. 시원한 결론이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학자 조지 잭슨 미바트는 긴 목이 다윈이 생각한 것처럼 생존에 유리한 것이었다면 다른 연관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게 마땅하지 않겠냐는 반론을 폈고, 다윈은 점진적 이론을 적용, 아주 작은 비율적 차이는 대다수 종에게는 유용하지 않았지만 초기 기린은 1mm가 늘어날 때마다 적합도가 그만큼 증가했을 것이라고 대응했다.
박물학자 로메인스는 진화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긴 목이 먼저 생겼고 그 목을 지지하도록 몸 전체가 적응했다는 주장을 펴는가하면, 월리스는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머리와 뿔, 형태와 색 등 피부 적응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00년 후, 현장연구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기린을 연구하면서 다윈론자들의 설명에 구멍이 있음을 발견한다.
실제로는 긴 목이 무색하게 기린은 낮은 곳에서 자란 풀을 즐겨 먹고, 먹이가 부족해지는 건기에도 낮은 곳의 풀을 먹었다. 다른 경쟁자와 먹이가 겹친다. 오히려 먹이가 풍부한 우기가 돼서야 높은 곳의 잎을 먹었다. 기린의 긴 목이 적응 이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이후 단 한번의 돌연변이로 긴 목이 생겨났을 수 있다는 도킨스의 주장까지, 기린은 어떻게 목이 길어졌는지 답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적자생존은 진화론의 제1원리쯤으로 여겨진다. 자연에 존재하는 효율·최적화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사회에도 적용, 환경에 잘 적응한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 다니엘 S. 밀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져온 이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자연선택은 그리 까다롭지 않으며, 많은 변종의 생존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밀로는 ‘굿 이너프’(다산사이언스)에서 적응을 제일 잘한 우수 유전자가 아닌 평범함이 인류진화의 열쇠라는 파격적 주장을 편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한경쟁을 불러일으키고 1등 추구에 줄세우는 ‘적자생존’ 신화가 만들어진걸까?
다윈의 오류와 자연선택의 어긋남을 조목조목 비판한 밀로는 우선, 다윈이 품종개량가의 이미지를 빌려 자연선택을 이론화한 잘못된 유추때문에 자연이 선택을 하며 그것도 최선의 형질을 선택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형성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무엇을 선택하거나 조작하거나 야기하거나 면밀히 검사하거나 정제하지 않는다. 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은 늘 변화하는 조건의 집합으로, 이 조건들이 서로 다른 형질들로 하여금 생물의 생존과 생식 확률에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기여하게 만든다. 어떤 종이나 개체가 잘 적응하건 않건, 아무도 그 형질들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로는 다윈이 자연선택에 전적으로 의존, 진화를 설명한 점도 오류로 지적한다. 자연선택은 일어나지만 유전적 부동(浮動)이나 지리적 격리, 창시자 효과 같은 비적응적 변화 메카니즘도 존재하는데, 이 경로들 중 어떤 것도 가장 강한 경쟁자나 최선의 표본에게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로에서 “보상을 좌우하는 것은 우수한 능력이 아니라 우연, 운”이다. 이들이 반드시 같은 종 중에서 적자는 아니며, 유리한 돌연변이 상태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해서 꼭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건 아니란 얘기다.
실제 진화의 이야기에서는 미천한 개체들도 살아남아 번식한다. 인간의 뇌 역시 자연선택에는 맞지 않는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큰 뇌는 산모와 아기를 위험에 빠트리고 뇌의 느린 성숙과 막대한 에너지 사용 등은 부담이다.
다윈 자신도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3년전엔 “(자연은)서툴고 낭비적이고 끔찍하게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며, 적자생존·효율성과는 다른 말을 했다.
그런데 ‘종의 기원’ 에서 다윈은 완고한 자연선택으로 돌아선다. 심지어 사회 적용성까지 언급한다.
“모든 생물은 자연의 경제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종이 경쟁자들과 같은 정도로 변하거나 발전하지 않는다면 도태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이후 다윈의 적자생존은 효율, 합리성 및 탁월성을 필요로 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본주의 사상과 결합,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도그마가 됐다고 밀로는 지적한다.
밀로에 따르면, 자연의 속성과 자본주의 윤리는 사실 정반대다. 자연은 변화와 창의성보다는 관성과 복제를 더 좋아한다. DNA의 목표는 100%복제 성공률이며, 생물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만 이동하며, 그렇지 않으면 살던 곳에 계속 머물려고 한다. 자연에서 변화는 돌연변이의 경우처럼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이거나 이동의 경우처럼 마지막 수단이란 것이다.
인간 사회도 들여다보면 1등, 탁월함이 지배적인 건 아니다. 자연처럼 과잉과 관성, 오류, 평범성, 실패한 실험이 너그럽게 용인된다. 각 개체는 도태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모두는 유전형질을 물려주려는 경쟁에서 이미 모두 승자라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뇌가 외부의 위험이 거의 사라진 현재 기능을 발휘할 곳을 찾아나서면서 과도한 탁월성 추구, 단순히 경쟁을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란 설명이다.
밀로는 다윈주의자들의 자연선택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진화론을 굿 이너프(Good Enough) 이론으로 설명하며, 탁월함 보다는 보편적 형질이 오히려 진화에서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모두 다른 지문처럼 개체가 다양성을 더 갖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설명이다.
밀로의 굿 이너프론은 평균, 보편성을 뜻하는 ‘중성(neutrality)’을 중심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다소 낯설지만 우리가 알던 진화론과 다른 따뜻한 새로운 진화론으로 인도한다.
굿 이너프/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다니엘 S. 밀로 지음, 이충호 옮김/다산사이언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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