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이공계 대학 혁신 없이 기술경쟁 어렵다

- 2021. 6. 3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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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연구서 기술이전까지
'지식 멀티플레이어役' 주문
부처별 이공계 정책 제각각
수월성 확대·규제 완화 시급

인공지능(AI), 기술 패권, 탄소제로, 감염병,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키워드다. 얼핏 보면 제각각인 것 같지만 모두 과학기술에 기반한 이슈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글로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과학기술 혁신 역량이 중요한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이공계 대학이다.

대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대학을 교육기관으로만 인식하기 쉽지만,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내에서 이공계 대학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대학의 역사는 기원전 387년쯤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적 의미의 대학은 12세기쯤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초기 근대 대학은 고등교육이라는 대학의 첫 번째 역할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이 정립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후 미국 연구중심 대학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계기로 대학의 연구 기능도 강조돼 왔다. 대학이 기존의 지식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넘어 학문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만들어 내도록 주문한 것인데, 이 연구 기능이 대학의 두 번째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교육과 연구가 대학의 전통적인 주요 기능으로 인식돼 왔으나, 1980년대 미국이 대학의 특허를 민간에 기술이전 하도록 장려하는 ‘바이·돌법’을 제정한 것을 계기로 ‘기업가적 대학’이라는 제3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지식의 전달(교육)과 생산(연구)은 물론 확산(기술이전)까지 지식 관리의 전 주기적 임무를 주문한 것이다.

이처럼 이공계 대학의 역할이 다변화된 것은 과학기술 혁신 프로세스가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는 불확실성 시대에서는 단계별 역할을 분업하는 시스템보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멀티플레이 시스템이 효과성·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대학이 사람을 키워내는 기관인 동시에 지식의 전주기적 관리라는 다양한 기초적 역할을 동시에 해주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불확실한 중장기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대신에 기존 지식을 재조합하면서 빠르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공계 대학에게 다양한 역할을 주문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 정책은 부처별로 파편화돼 있다. 교육당국은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이공계 대학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보편적 교육에 기반한 공유대학을 추진하고 있으며, 제3의 역할과 관련된 산학협력 정책은 부처별로 각기 다른 법령과 정책들로 분절돼 있다. 바둑 두는 사람은 하나인데 훈수 두는 사람은 여럿인 셈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도 문제다. 이공계 대학이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도록 규제를 완화해도 모자랄 판에 수업시수나 출석부 보관의무 준수 여부를 감사해 징계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 재정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의 고등교육 지출을 하고 있는 가운데 13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돼 있어 상당수 대학이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이 재정 문제로 해외 학술지 구독과 특허등록비 지원을 줄여나가고 있고, 대출을 받아 연구장비를 마련하는 신임 이공계 교원까지 생겨나고 있다. 교육·연구·기술이전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실정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학의 역할이 확장돼 온 만큼 멀티플레이어가 된 이공계 대학이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수월성을 강조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는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백신을 만들어낸 나라,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나라, AI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 탄소중립 이슈를 제기하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세계적 수준의 이공계 대학을 가진 나라다. 기본기 없이 과학기술 혁신을 논할 수 없다. 이공계 대학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수월성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할 떄이다. 이공계 대학 샌드박스 수준의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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