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서인국이어서 가능했던 추상적 캐릭터의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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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멸망(서인국)이라는 초현실적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사멸하는 존재인 우리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멸망의 죽음과 환생을 통해 드라마가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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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정덕현] 사실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라는 작품은 그 세계관은 추상적이다. 당연히 멸망(서인국)이라는 초현실적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추상적인 세계관을 통해 들여다보려 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그저 겉면의 이야기인 판타지 멜로로만 치부하기에는 특별한 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영에 즈음해 되돌아보면, 멸망이 죽게 됐다가(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해 사람으로 탁동경(박보영) 앞에 나타나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삶과 죽음에 대한 역설을 그리려 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즉 저 세상의 꽃밭에서 소녀신(정지소)을 만난 멸망은 그가 정원의 꽃을 위한 나비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 나비는 죽어 그 자리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죽어야 다시 피어나는 삶. 이건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멸망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로 존재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라지지(죽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삶을 알지 못한다. 죽음이 있어야 삶도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100일 시한부 판정을 받은 탁동경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너무 죽음 가까이 있어 하루하루의 삶이 더 생생하다. 그는 멸망에게조차 '사람'이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멸망에게 사람이란 이름을 지어주면서 멸망은 사람이 되어간다(사람의 감정을 알아간다).
멸망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건, 우리가 겪는 삶의 조건을 담아낸다. 누구나 사멸하는 존재인 우리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멸망의 죽음과 환생을 통해 드라마가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멸망과 탁동경의 판타지 멜로라는 장르를 통해.

물론 이 이야기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죽음 앞에 서게 됐던 탁동경이라는 한 인물이 그 '멸망'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인물과의 멜로가 실제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 건 멸망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연기해낸 서인국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어찌 보면 냉소적인 얼굴로 시작했던 멸망이라는 인물에 생기를 부여한 건 다름 아닌 서인국이다. 그는 인간적 감정을 전혀 모르는 듯한 냉정한 얼굴로 등장해서, 흔들리다가 사랑에 빠지고 죽음을 선택하고는 다시 편안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그 과정을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켰다.

사실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 신화나 설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캐릭터도 아닌 '멸망' 같은 추상적 캐릭터를 구체적인 인물로서 연기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초적인 전제였을 게다. 그런 점에서 이런 추상적 인물을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구현해낸 서인국의 역할은 실로 컸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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