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내가 본 야당 대선 주자들

선우정 논설위원 2021. 6.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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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약점을 들춰내기보다
서로 장점을 부각시켜
작아지기만 하던
한국 보수 정치의 그릇을
몇 배로 키웠으면 한다

요즘 이름이 나오는 야당 대선 후보들을 어쩌다 만난 일이 있다. 편한 자리였는데 대부분 대통령 얘기가 나오기 훨씬 전이라 정치에 포장되지 않은 면면을 곁에서 볼 수 있었다. 일회성 만남에서 얻은 단편적 선입관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에 대한 독자의 평가에 작은 소재를 제공한다는 뜻에서 내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직후의 윤석열. 그는 문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다. 여기서 얻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4년 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을 본 건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 수사를 정리하고 이명박 대통령 수사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죽은 권력의 두 전직 대통령 수사에 대해 그가 큰 부담을 내비친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두고 보면 알 겁니다”라고 몇 차례 큰소리로 반복했다. 이 대통령은 감옥에 안 갈 거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검찰은 그를 구속했고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그러자 후배 기자가 “그 직후에 증거가 쏟아져 나와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한 손에 칼, 한 손에 법전을 쥐고 있으니 (군인 대통령보다) 더 무서울 것”이라고 했다. 검찰 독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은 권력 수사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는 권력을 냉정하게 수사했다. 그런 그가 정권을 잡으면 자신의 살아있는 권력을 보호하고 죽은 권력에 가혹할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울산 선거를 수사했다. 이게 정상적 검찰이다. 정권을 잡아도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날 동석한 부하 검사가 더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가 윤석열을 대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 날 새벽 박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며 반주를 피했다. ‘이 정권에서 잘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조국 수사를 막은 선배에게 “당신도 검사냐”고 들이받았다. 그리고 장렬하게 좌천됐다. 검사에 대한 나의 인상이 그때 달라졌다.

최재형 전 원장과는 정말 사적으로 만났다. 존경하는 부친 최영섭 대령과 관련해 내가 무언가를 할 때였다. 내 선친도 참전용사라 주로 부친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최 전 원장이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미담에 대해 언급했다. 그 미담이 40년 전 조선일보 특종 기사였기 때문이다. 몸이 부자유스러운 친구를 등에 업고 등하교하면서 함께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야기다.

뜻밖에 최 전 원장은 기사를 읽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친구와 함께 미담 주인공이 될 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멀쩡한 몸으로 친구를 업고 다니다가 사시에 합격한 내가 아니라, 친구 등에 업혀서라도 공부하면서 사시에 합격한 그가 훨씬 중요한 주인공이 아니냐”고 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진면목을 알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보수(保守)의 원형에 대해 공부하다가 최영섭 가문을 접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기성 정치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최 전 원장에게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정치 선진국이 그렇듯 우리도 이런 집안을 보수의 자산으로 삼아 정치 명가로 육성할 때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홍준표 의원은 그가 자유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났을 때 만났다. 유튜브 방송을 준비할 때였다. 그는 달변가이자 다변가였다. 웅변가이자 다변가인 윤석열의 발언 점유율이 80%였다면 그는 90%를 넘는 듯했다. 자신이 나서면 바로 보수의 대표 유튜버가 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그의 낙천성과 자신감이 좋았다.

유튜브 '홍카레오(홍카콜라+알릴레오)' 맞짱토론을 위해 출전하는 홍준표 전 대표. 하지만 그에게는 이 수준을 넘어 정치적 대도약이 가능한 입지전적 서사가 있다.

나는 이런 보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훨씬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자력으로 가난을 딛고 일어나 스타 검사로 성장했고 24년 동안 정계에서 국회의원, 지사, 당대표, 대선 후보를 지냈다. 적을 줄이고 사람을 끌어안고 언어를 정제하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 사람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만난 김에 직접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 했다. 그의 자신감엔 파고들 빈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를 기대한다. 그런 입지전적 서사(敍事)를 가진 인물은 드물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에 만났다. 나는 그가 추진하던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비판적으로 봤다. 그런데 그의 설명을 듣고 바로 수긍하고 말았다. 그는 이성적으로 토론할 때 정말 빛나는 사람이었다. 많은 KDI 출신이 왜 그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그는 정치판에서 남과 싸울 때 가장 이상했다. 얼굴이 달라졌다. 나는 그에게 “대통령과의 싸움에 앞장만 안 서도 정말 큰 정치인이 될 듯하다”고 했다. 그에 대한 싸움꾼 인식이 그의 진정한 가치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주제넘은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가 한국 정치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서로 단점과 약점을 들춰내기보다는 장점을 부각해 한국 보수 정치의 그릇을 몇 배로 키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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